③대림절의 신비
(승전) 전례는 또한 主의 성탄을 앞서고 준비하고 고하는 중요한 사건을 상기시킨다. 이사야의 예언·성모영보·성모의 성부 엘리자벳 방문·세자 성요한의 탄생과 설교가 그것이다. 여기 말하자면 전례가 대림절의 신비 속에 접근되는 구원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전례가 오고 또 와야 할 그 신비의 은총을 언제나 우리에게 전해 주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전례가 이사야와 요한과 성마리아를 상기시킨다면 그것은 특히 대림의 상징적이요, 효과적인 시절에 그들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아니하고 교회 안에 항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언자와 선구자와, 하느님 어머니의 이 세가지 사명을 계속해야 한다. 교회는 主께서 다시 오실때 까지 즉 대림절의 신비와 때를 같이 한다는 뜻에서 기다림이 더 없을 때 까지 이 사명을 계속해야 한다. 예언적 사명에서 대림절의 교회는 심판을 告하고 이미 그것을 앞서 행한다. 선구자의 신비를 계속하면서 교회는 희망과 기다림을 촉구시킨다.
기다림이란 훌륭한 신자의 직책이요, 우리의 종교의 가장 판연한 특색이다.
『이스라엘민족 이래 지상에서의 희망의 불꽃을 꺼지지 않도록 간직하는 책임을 진 그리스도신자들은 승천 후 12세기 동안 무엇을 고대했는가?』 이렇게 샬댕 신부는 하늘과 땅의 하나의 자녀의 소명은 선구자의 소명이라고 표현했다. 예언자들 다음에 대림절의 교회는 主의 내림을 원하게 해야 하고 선구자 다음 교회는 동정과 어머니와 아로서의 성마리아의 표양을 따라 主앞에 걸어가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뜻의 이행과 애덕과 기도와 성사로 그를 맞이해야하고 교회는 마음속에 주의 탄생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교회의 생활이 대림절의 신비 속에 약속되어 완전히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대림절의 이 신비는 내림과 고대로 동시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내림이 이루어지고 또 동시에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나 그 완성은 재림이전에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의 말대로 대림절의 성사는 그리스도가 구세주로서 이 세상에 현존하는 신비이다. 『여러분 가운데 계신 분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읍니다』라고 대림 제3주일 복음이 말한다. 대림절 4주간은 주의 탄생부터 그의 영화로운 재림까지의 이 간격, 언제나 충만해있고 언제나 열려있는 이 간격의 하나의 상징, 참으로 효과 있는 상징이다. 이러한 뜻으로 특히 성 베르나르도 이후 세개의 대림 즉 주의 세개의 내림에 대해서 가끔 말한다. 그리스도교적 靈性은 전례자체에서 그 가장 훌륭한 정당성을 발견하는, 이와 같은 방법을 들어냈다. 사실 主의 첫째와 마지막 내림사이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의 내림이 자리를 점령한다. 우리의 현재 생활가운데 고대되는 그리스도가 그의 은총으로 도래하고, 우리 안에 그의 행동을 행사하는 「둘째 내림」은 만일 우리가 이미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찾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더욱 더 정화되고 죄와 자기기만에서 탈피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데 있다. 대림절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신비적으로 현존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전례는 그것을 「빠스카」의 신비에 근본적으로 경합시킨다. 전례는 「빠스카」의 신비를 거행하면서 대림절의 신비를 거행한다.
즉 미사를 둘러싸는 모든 성무가 그러하다. 전례에서 主의 「빠스카」의 신비를 성사적으로 현존시킴이 없이 대림절이 없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당신의 마지막이요, 영광스러운 내림을 친히 준비하신다. 언제나 主는 당신 제사를 성부께 바치고 사람들을 모으고 당신 제자들로 「빠스카」를 먹고 당신과 함께 죄에서 은총으로,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그들을 지나가게 하기위해 오신다. 이 새 생명은 하느님 안에 당신과 함께 감추어져 있으나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그때에 우리도 또한 그와 더불어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 대림절의 신비는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신비이다.
主의 길을 준비하고 우리 가운데 계시나 우리가 모르고 있는 그분의 소리를 듣도록 끊임없이 우리는 초대되었으며 전례는 그의 영광 중에 그를 영접할 수 있기 위해 主의 「빠스카」적 신비에 살도록 하면서 재림의 문턱까지 우리를 끊임없이 인도한다. 전례는 천국의 靈的 「비젼」을 이미 제시하면서 대림절의 참다운 정신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 안에 그의 내림을 기다리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열린, 오! 새로운 세계여 안녕』하고 뽈끌로델은 외쳤다.
신스떼파노 신부(본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