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㉑ 어떤 信仰(신앙)에 自身(자신)맡길 수 없어
자기 信仰(신앙)에 헌신하는 동료들에겐 敬意(경의)가 지면서
발행일1968-12-15 [제648호, 4면]
나에겐 일정한 信仰이없다. 그러나 나에게 宗敎 구실을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처럼 儒敎的인 倫理나 儀式이나 風習이다. 앞에서 「宗敎 구실」을 한다 함은 특별한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倫理나 價値에 대한 感覺이나 觀念을 어느 정도 규제하며 우리의 生活의 形式을 어느 정도를 틀잡아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孔子를 비롯한 聖賢들의 言行의 의미를 발견하고 三綱五倫을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신봉하고 친척들을 가깝게 느끼고 婚禮와 葬禮에 유교적인 節次를 밟고 四代奉祀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지 않으니 유교는 확실히 내게 있어서는 宗敎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 적극적인 유교도로 자처할 수도 없고 자처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밖의 어떤 신앙을 가질 필요도 아직까지는 느끼지 않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이즘」에 나 자신을 맡기기 싫기 때문이다. 물론 「이즘」에 자신을 맡긴다고 말하는 것은 信仰을 가진 분들에게는 어폐가 있는 말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떠한 종교도 그것에 해당하는 서구어가 대개 그렇듯이 「이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최근에 경애하는 동료 한분이 信仰을 갖게 되고 열심히 敎會관계의 일을 보고 있다. 그분이 내게 말한 동기는 자기수련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 나에게는 독실한 敎人인 친구가 있다. 이러한 同僚나 친구의 信仰의 선택이 나와의 우정에 하동의 지장을 가져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이 자기가 선택한 신앙에 헌신하는 것을 敬意로써 대하고도 있다.
그러나 信仰이든 무슨 主義이든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내맡기기에는 나의 知性이 주저하고 나의 나 자신에 대한 眞實이 쉽사리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의 知性과 나 자신의 진실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천적인 면에서는 나의 知性이나 眞實이 종교에 공통된 위대한 戒律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라고 나 자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