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的(철학적) 믿음] 카알 야스퍼스의 思想(사상)
人間(인간), 맹목 아닌 自覺(자각)에 살아
自由(자유)의 存在(존재)란 실패하기 마련
다른 狀況(상황) · 條件(조건)에서 「사랑의 투쟁」으로 융합
“실패 안에 存在體驗(존재체험)하는 믿음의 승리”
카알 야스퍼스의 생애는 그가 일생을 교수로 지냈다는 것으로 다 된다. 독일어린이들은 교수가 더 높으냐 주교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토론할 정도로 교수의 사회적 위치는 큰 것이다. 그리고 교수의 생애란 단조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외모로 보아 단조로운 교수생활은 그 정신생활에 있어서 격렬한 변동이 있기 마련이다. 야스퍼스의 교수생활은 정신병리학 의사로 시작하여 의사교수에서 심리학교수로, 심리학에서 철학으로 변천하여 갔다.
이와같은 과정을 거친 교수생활에서 형성된 그의 철학은 우리가 살아온 20세기를 실존주의사상으로 휩쓸었으며, 그가 가고 없는 오늘날은 물론 앞으로도 세계사상사에 길이 빛날 것이며,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을 인간연구에 몸을 던진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지나가야 할 역사의 또 하나의 문이 되었다.
제한된 지면에서 그의 사상을 간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의 사상은 실존에서 인간의 실패를 발견하고 이 실패에서 「사랑」을 딛고 「철학적 신앙」으로 도약하여 결국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실존주의자이다. 많은 저서 가운데서 그의 사상 줄거리를 담은 대표작이 「철학」 또는 「실존철학」이라고 소개된 세 권의 저서이다.
야스퍼스의 철학은 「존재」의 3층탑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첫째 양식은 「거기에 존재하는 존재」로서 이것은 자연세계를 말한다.
둘째 양식은 「내가 존재하는 존재」로 이것은 나의 체험적 존재 즉 실존이라고 한다. 여기서 첫째와 둘째는 서로 「주제」와 「대상」의 관계를 가진다. 세째 존재양식은 「그 자체에서 존재하는 존재」로서 이것이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스퍼스 철학의 과제는 첫째는 「세계를 탐색하는 일」이요 (「철학」의 제1권) 둘째는 「실존을 밝혀보는 일」이요(제2권) 마지막으로 「초월에로의 접근을 시도하는 일」이다. (제3권)
그런데 「세계를 탐색하는」 첫째 과업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세계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세계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내게 주어진다. 그러나 「내가 아닌 것」이 「나에게」 주어지는 이상 이 세계는 내가 말려든 세계이다. 이 세계는 단순히 내가 구경하면 되는 세계가 아니고 내가 살아가야 할 나의 세계이다. 여기서부터 주체와 대상 나와 남의 한계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소리일까? 그것은 단순히 주어진 세계 속에서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생각」하며 깨닫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세계는 생각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생각 · 이성 · 개념 등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세계가 두개의 세계로 나에게 동시에 주어짐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나의 세계」요 또 하나는 「객관의 세계」이다. 이 모순된 두 개의 세계를 완전 파악하는 일은 야스퍼스의 표현대로 「마술쟁이의 꿈」이랄 밖에 없다. 철학의 첫째 과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둘째 과업은 「실존을 밝혀보는 일」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즉 실존을 야스퍼스는 세가지 본질적인 특징에서 찾는다 - 자신을 선택하는 자유, 다른 사람과 사랑의 교류, 세계속에서 발전하는 역사성. 그런데 자유라는 것은 잘 생각해보면 매우 불행한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골라놓고 보면 그것은 언제든지 한정되어 있다.
여러가지 중에서 하나를 골랐을 때 이미 자유는 불만으로 변한다.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자유의 존재는 무한히 펼쳐지려는 경향이 있음을 말하고 그 욕구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자유의 존재는 처음부터 실패하기로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가른 사람과의 교류가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유를 가진 인간이 다른 사람과 교류한다면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각각 다른 상황과 조건 속에서 자유이 선택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융합을 못이루는 사랑의 교류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사랑의 투쟁」이라 한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다른 상황 속에서 사는 자유의 인간들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은 서로의 처지를 멀리서 건드리지 않고 자기의 자유의 위치를 지키는 일이다. 이것은 인격존중이라 한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야스퍼스의 대답은 「철학적 믿음」이라고 한다. 『종교가들은 하느님을 믿고 무신론자들은 믿기를 거부하지만 철학가는 철학가로서의 믿음이 있다』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그 믿음의 대상은 순수 소극적이다. 인식면에서 보자면 무엇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하느님이고 존재면에서 보자면 아무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 다른 존재이다. 이것이 이른다 「초월존재」로서 밑의 충의 존재양식을 모두 부정하면 초월세계로 접근하게 된다. 『거기 있는 존재가 아닌 것 내가 있는 존재가 아닌 것 자유의 모순이 없는 것… 야스퍼스에게 있어서는 실패속에 존재를 체험하는 것이 믿음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다.』
白敏寬(가톨릭大學 敎授 · 本社 論說委員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