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사순절 묵상자료를 일요일미사에서 택하지 않고 토요일 미사경에서 택한 것을 애독자 여러분께서 아마 이상하게 여기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중에는 일요일이건 평일미사경이건 간에 그 내용에 있어 차별없이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어느것이나 초대교회의 교리내용의 일부분인 까닭이다.
사순절 제2주일 후 토요일 미사제목은 『형과 동생』이라 할 수 있다. 옛날 그당시 마르첼리누스와 베드로라는 두 형제 성인 주보성당에서 미사드리기 위해 모였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형제 사이에 대한 성경귀절들을 골라서 낭독했었다. 독서와 복음에 있어 두 경문의 주인공은 다같이 형이 아니고 동생인 점이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위의 경우에 있어 맏아들인 형이 손해를 보게된다. 한국에 있어서의 통상적인 풍습과 같이 구약의 이스라엘에 있어서 맏아들은 항상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이러한 통상제도를 어떤 경우에는 안중에 두지않으시고 오히려 동생에게 더 풍성한 축복을 베푸신다. 전능의 상징인 오른손을 아랫자리를 상징하는 왼쪽에 있는 동생의 머리위에 얹으신다. 형을 배격한다는 표현보다는 취택(取擇)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딘 자가 먼저 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된다』라고 하셨다. 이번 토요일의 미사경은 아까 인용한 귀절의 메아리요 반영이다. 신약의 교회는 자신을 동생으로 자처하고 또한 유대아교회를 형으로 보고 있다. 유대아교회는 먼저 태어났지만 교만한 바리서이주의에 빠져 은총을 잃어버렸고 그대신 신약의 교회가 간택된 것이다. 만일에 있어 신약의 교회도 바리서이주의에 빠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
신약의 교회가 바리서이주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 가능성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개인적 내지 집단적으로 오늘날까지 교회내 방방곡곡에서 제용두(龍頭)를 죽순처럼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동생인 개정정신(改正精神)도 언제나 자라고 있다.
특히 공의회에서 이러한 「동생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 놀랍게도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의 형처럼 이 젊은 정신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도 매일매일 더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20세기의 바리세이들이 공의회의 성공을 말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형에게보다 동생에게 더 풍성한 축복을 주실 것이다.
백 쁠라치도(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