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1) 놀람 ⑦
발행일1969-03-09 [제659호, 4면]
『자, 그만 일어날까요?』
박훈씨가 적당한 때라고 보고 말했다. 혜경이 팔목시계를 보더니
『아직 시간이 있지마는…』
그러면서 빽을 집었다. 넷은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차값은 오늘의 신랑 주군이 얼른 치뤘다.
『모레쯤 올라 온댔던가요?』
박훈씨가 주군에게 물었다.
『예, 그렇게 예정하고 있읍니다.』
『그럼 내가 내일 애려가게 될거니까 주형, 대구에서 만나봤음 좋겠는데…』
『주군이라고 해주세요. 그랬으면 저두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그럼 거기 전화번호 적어둘까요/』
『예.』
주군이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박훈씨가 번호를 말했다. 그리고
『자, 그럼 다녀오시오. 대구에서 만나게 된다면 더 좋지마는…』
여기서 두 젊은이를 놓아 주는게 옳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박훈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 될 수 있으면 대구에서 뵙도록 하겠읍니다.』
주군이 인사하고 혜경이와 함께 다시 역안의 대합실로 들어갔다. 박훈씨와 현주는 다시 둘만으로 되었다. 이무렵에는 도착한 차가 없는 모양 택시 잡는 일렬(一列)이 아까처럼 그렇게 길지 않았다. 오히려 역앞까지 오는 택시가 더 많았다. 남행열차(南行列車)가 떠날 시간이 되어가고 있는 탓일게다.
둘은 쉽게 택시를 잡아탔다.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군요.』
차가 남대문을 옆을 지날때 박훈씨는 입을 열었다.
『혜경이네 말인가요?』
『그렇소. 혜경씨의 성격도 무척 좋지마는 주군도 참으로 마음에 드는 청년인데…』
『친구들한테도 무척 존경을 받는데요.』
『그럴꺼요…』
하더니 박훈씨는 한참 무얼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현주씨에게는 좋은 남자친구가 있을텐데…』
가볍게 하는 말같았으나 사실은 그렇지 안핟고 현주에게 들리는 어조였다.
『제게 남성친구? 있을 것 같애요?』
현주는 또 경계해야 된다는 의식이 발동하면서도 가볍게 응수한다는 생각으로 발음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박훈씨이게는 그렇지 않게 들리는 것이었다.
『있기만 할 것 같지 않은데…』
『그래요?』
『그렇게 생각되는군요』
『호 호 호… 잘 보셨어요. 아주 훌륭한 친구가 있어요.』
『그렇겠지.』
박훈씨는 입을 다물더니 포켓트를 뒤져 담배갑을 꺼내 한대를 뽑았다. 붙여 연기를 뿜을뿐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자세며 태도가 현주는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여기 세워주세요.』
마침 차가 종로사가에서 좌회전을 하게 됐다. 박훈씨가 가는 곳은 혜화동인 모양이었다. 현주네 집은 원남동이었다. 조금 더 가서 내려도 될 것이로되 현주는 박훈씨의 무거운 자레와 태도에 저도 모르게 차를 세웠던 것이다.
『아니, 여기서 내려야 되나요? 집까지 가서 거기서 내려드리고 가자고 생각했는데…』
『괜찮아요. 여기서 내리는 편이 가까와요』
『그래요? 그럼 내일 정오에 다시 만나기로 할까요? 지금은 밤이기도 하고…』
그리고 박훈씨는 내리는 현주에게 이번에는 고궁이 아니고 다방이름을 댔다. 그러겠노라고 약속도 하지않고 그렇다고 거절도 못한채 현주는 내려버렸다. 문이 쾅 닫겨지고 차는 테일 라이트를 반짝거리면서 어둠속으로 살아졌다.
이튿날 아침 열한시쯤이었다. 현주는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었다.
(나가느냐 안나가느냐?)
약속한 것이 아니니 안나간대도 실례딜 것이 하나도 없다.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해왔다.
(전보까지 쳐서 올라온다는 걸 알려준 분에게 인사가 아닐꺼야?)
그렇다고 생각하니 지난밤에 마치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것처럼 했던 일이 무교양한일 같이 느껴졌다. 다소 무거운 태도아 표정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걸 나쁜 의미로 대뜸 해석한다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 아닐까?
(얼마나 나를 경솔하고 천박한 아가씨로 보았을까?)
그러나 다른 목소리는
(잘했어. 중년신사는 우뭉하니까…)
이렇게 속삭여주고 있었다.
(나가? 안나가?)
그러나 마침내 현주는 경복궁으로 처음 찾아갔을 때와는 달리 정성들여 머리나 얼굴을 다듬은 것은 아닌, 여느때의 모습대로, 여자들끼리의 친구를 잠깐 만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지정한 곳에 나갔다.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는군. 오전중의 볼일이 의외로 쉽게 얼른 끝나 유유자적하는 기분입니다. 자 어서 앉으시오』
『그랬어요?』
현주는 망서렸던게 스스로 웃읍다고 생각했다. 박훈씨의 태도에는 조금도 의심이 가져지는 구석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주는 마음이 놓여짐을 깨달으면서 차를 청해 마셨다.
『물만 먹군 살 순없고 자 간단히 점심을 먹읍시다.』
그말도 아주 담담하게 들렸다. 현주는
『참 이번엔 제가 대접하겠어요』
전에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되살려지면서 일어났다.
『이번엔 제가? 하하. 누가 내든 갑시다. 시장하기도 하고…』
『그럼 더좋군요. 요즘 서울에 새로 등장한 명물이 있어요. 한번 맛보세요.』
『새 명물? 그렇다면 더욱 좋구.』
현주가 앞장을 서서 큰길에 나왔다.
택시를 잡았다.
『타세요』
『차를 타고 간다』
『선생님은 손님이 아니에요? 융숭히 대접해야잖아요』
차가 가는 곳은 함흥냉면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