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영광 땅위에 평화
그의 降生(강생)은 애련함과 자비 때문
누가 원래 악한자냐 그 소용돌이 밑바닥엔
누구에게나 人間(인간)의 아름다움과 착함있는 것을
땅의 평화는 神(신)과 人間(인간) 相互關係(상호관계)
나도 그의 모상으로 된 아름답고 살고픈 人間(인간)
이 은총을 開花(개화)시킴이 人間課題(인간과제)
이글과 그림은 「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의 참뜻에 대한 黙想을 부탁한 본편집실 청탁에 대해 필자의 이름과 소속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某修女院修女의 것이다. 그림①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께 피조물이 드리는 영광의 찬미·흠숭·사랑의 교류가 이뤄짐의 상징』이며 그림②는 『탁신하신 예수아기께 天上天下의 피조물이 조배드린다는 상징』으로 표현했다는 作者의 解說이다.(편집실)
하늘! 그것은 해와 달이 있고 밤으로는 별들이 있어 좋다. 여러 모양으로 구름이 생겨나기도 하고 때로는 젖빛 안개가 끼는 것도 좋고 바다보다 넓고 가없이 번져나간 무한한 空間에 침묵이 있어 좋다.
이렇게 사랑스런 하늘에 또한 하느님이 사신다는 건 얼마나 좋은가.
이리도 좋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맨처음으로 즐겨 바라보셨을 하느님을 생각하면 이모든 것이 그저 「있음」으로서 좋지 않은가.
게다가 聖父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외아들 聖子께서 먼 날에 오셨고 지금도 오시고 또 계속 現仔하시면서 성세성사로서 사람들 영혼 안에 나시고 生活하신다.
주님. 당신의 영광은 영원으로 부터 무궁세에 이르기까지 충만하신데 어떻게 이 가련한 죄인들의 사탕을 원하시나이까. 지극히 거룩하온 聖三位 안에 세위가 서로 사랑과 영광과 환희로 충만하오니 작고 작은 者가 드리는 영광이라야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련만 갈망하시나이까.
아,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마치 생소한분을 대하듯이 서먹해하다니. 피조물이 조물주께 드려 마땅한 흠승과 인식과 섬김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나.
나는 때때로 옹기그릇이 좋아진다. 그 투박한 질그릇이 모양이 좋다거나 색깔이 좋고 견고해서가 아니라, 어쩐지 어수룩한 느낌이 있고 향토적이고 되바라지지 않아서 좋다는 것뿐이다. 사용가치로 따진다면야 그보다 세련되고 쓸모있고 곱상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쨌든 좋은 건 좋은 것이고 나쁜 건 나쁜 것이니까 좋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다.
어느 노련한 스님 말씀 마따나 밉고 곱맙다는 건 원래 관심할게 아니란 듯이 사실이 편견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불화는 그럼 공연한 싸움질이란 말인가.
아! 주님! 오늘은 이런 것보다는 당신의 영광이란 참말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옵니다.
무엇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께서 사람의 섬김을 영광으로 삼으시는게 무슨 까닭이시란 말씀이시 온지. 신부님의 강론도 듣고 책도 읽고 때로는 대화도 나눠보았으나 그때마다 아는 것도 같았는데 막상 무엇」 「어떤 것이냐」고 캐물으면 두리뭉실처럼 깨달음이 적은 것이옵니다.
그러나 조금쯤 인식되는 것은 당신께서 탁신하신 까닭이 애련함과 자비 때문이요. 신성과 인성의 인간으로서 모든 것에 모범이지요. 스승이 되심으로써 수난하심과 부활승천 하시기까지 누누히 깨우치시고 교훈하신 바가 「당신이 곧 천주성자」신 것을 세상 사람들이 신앙으로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한 아버지의 양자가 되는 것이었읍니다. 이는 당신 영광이며 영예인 것이며 사람에게는 구원과 영생이 되는 것임을 가르치셨나이다.
작고 작은 아기예수님, 당신을 누일 곳조차 없어 겨우 빌어 얻어 은신하신 곳이 우중충하고 싸늘한 외양간이었으니 성모님의 지극한 모성의 쓰라림을 어이 다 이핸들 하리까.
어둠이 빛을 용납치 않은 어리석음아. 네 어두움이 빛을 용납하라. 빛으로 인하여 네 어둠의 심연이 밝게 하라. 영광이신 그리스도를 救世主로 모시어라.
영광이신 그리스도를! 그리하여 네 영혼이 어둠속에서 외로워함을 측은히 여겨 그 슬퍼함을 달래라.
그리한 후 主안에 함상 즐거워하며 또 즐거워하자. 누가 원래 악한 사람이냐. 카인의 후예들이냐. 소용돌이치는 그 밑바닥에는 누구에게나 人間의 아름다움과 착함이 있는 것을….
사랑하라. 그래서 너희 온순함을 알려라. 천주 거기가까이 계시리라.
주님. 이 땅을 강복하시고 성화시키시며 평화케 하소서. 모든 이해를 초월하시는 당신 평화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당신 안에 보호하소서.
예수님! 당신 이름은 참으로 기이하십니다. 당신을 모르는 이들은 혹 즐거움을 모르고 내적 평화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채 사오니 당신 이름이 위대하시며 만방에서 당신 이름에 찬미와 흠숭을 드리오니 이는 우리에게 나신 平和의 임금, 지금이나 후세에 「아버지」라 불러질 것이오며 그 나라는 끝이 없음이니다.
또한 주님은 聖父의 영광의 反影이시며 그 本質의 초상이시니 당신따라지어진 사람은 원래 얼마나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더이까.
『나는 천주님의 모양으로 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女子』 그리고 『살고 싶은 女性』임을 마음 깊이 새기자.
이 은총을 활짝 개화시킴이 인간과제리라.
아 그러고 보면 이제 조금은 알 듯도 싶습니다. 당신께 영광의 찬미를 드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나마 깨달아집니다. 조물주께 드릴 것은 마땅히 조물주께 드림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인간들이 평화로이 살 수 있는 것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상호교류맺음)에 있는 것이지요. 즉 자비의 임금께서 공으로 주시는 은총이며 성실하고 착한 영혼에게 베풀어 주시는 당신 안에서의 생활인 상급임을 깨달아 집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天主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이 귀절을 곡조 따라 제 영혼이 당신 안에서 읊조릴 때 얼마나 감미로운지요.
주 천주여 하늘의 임금이여.
전능하신 천주성부여.
주를 기다리나이다. 찬미 하나이다.
주를 흡수하나이다. 높이 받드나이다.
주의 영광 크시기에 감사 하나이다.
『너희 성부 완전하심같이 너희도 완전한자 되어라. 겸손함과 양선함을 내게와 배우라』하셨건만 좀 더 복잡한 인간이기에 조금만 예외가 생겨도 울고 웃고 부르짖고 탄식하고 원망하고 허위적 거리오니 「신덕이 적은자」이요. 은혜를 주시어도 잘 쓸줄도 모르니 허사이다.
『안으로 맘돌려 님 사랑하는 것』이란 옛날 聖人聖女나 소수의 특정인이나 하는 것, 세월없이 들앉았는 이들이나 하는 거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하심도 결국 맘가짐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며 자신과 이웃에 평화와 사랑을 위하여 말을 삼가고 적당한 침묵이 수라는 걸거다.
『君子를 모심에 세가지의 허물이 있기 쉽다. 묻기 전에 먼저 말함은 조급함이요, 물어도 듣고만 있음은 隱避함이요, 顔色을 살피지 않고 멋대로 말함은 소경에 지나지 않는다.』(孔子)
이 때문에 「너와 나」의 관계가 진전되지를 못하고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끼리 불목하게 됨도 이런 이유라면 과언일는지. 평화와 행복 사랑은 저마다 원해도 내안에 만족이 없고 자신의 처소가 항상 못마땅하고 불쾌하고 거북상스러우니 자기 한계의 위치를 알고자하는 건지 모르겠다. 평화한 사람 적어도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 뿌리며간 「평화의 씨앗」을 물줘 가꾸고 자라게하는 건 자신이다. 가라지처럼 염체없이 불쑥 나타나는 것도 아니겠는데-.
과연 내안에 조찰한 옥좌가 마련되었는가. 자케오의 목처럼 목을 길게느려 기다렸는가. 오실 임금님은 벌써 여기 제시온데-.
(님을 누린다는 것 님안에 내없는 듯 숨어산다는 것 님만을 위해 산다는 건 과연 어렵기만 한 것인가. 나를 잊자. 나를 망각한자리에 님의 모습을 새기자. 죽는다는 건 살기위한 죽음이어야 한다. 또한 사랑의 생활 온전한 自由와 平和를 위해서이다.)
(코전 13·사랑의 雅歌) 사나 죽으나 내 원할 것은 주께서 항상 내안에 영광의 찬미를 받으실것 뿐이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강생의 미사로 얻은 은총으로서 끊임없는 내림의 갈망과 열망으로 당신을 기리며, 육신의 힘이 쇠진하여 죽음이 오기까지, 또한 마지막 날 영광의 임금, 대사제, 심판자로서 임(PARUSIA)하시기까지 지복은 이미 시작되리라.
천주 성부의 영광안에 성신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고 홀로 높으시도다! 아멘.
◉(갈멜수도원 O.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