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老司祭(노사제) 探訪記(탐방기)] 그 시절의 성탄은…
사발 등 밝히고 성가로 밤새워
검정 두루막에 미투리 신고 오랫만의 나들이
성탄 밤의 꿀맛 같은 떡국맛 잊을 수 없어
“요즘 사람 웬걸 그런 극기할 수 있을 라구”
지금은 성탄돼도 그전처럼 기쁘지 않아
현재 생존한 성직자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이기준(토마·85) 신부님과 한국가톨릭언론계 개척자인 윤형중(마테오·66) 신부님을 찾아 그분들의 어린 시절의 성탄절에 대해 알아본다.
▲李신부=침상에 누워계시다가 기자의 부축을 받고 의자에 앉은 이 신부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70여년전 소신학교 시절의 성탄절을 회상한다. 한참 후에 돋보기안경 너머로 필자를 바라보며 『그땐 전깃불이 없어서 성탄날밤엔 전깃불대신 신학교 뜰안에 호롱불을 달아 놓았었지』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11월 중순이 되면 그때부터 신학교엔 성탄기분이 돌기 시작한다. 성극연습, 성가연습 그리고 열심한 학생들은 단체로 하는 9일기구전에 2차 9일기구 3차 9일기구까지 하며 예수아기를 맞이할 그이에게 바칠 영적 준비에 바빴다. 이 어린신학생들의 영적선물은 이렇게 마련되었단다. 영성체·미사·고해·희생·극기·활살기구 묵주신공(로자리오의 기도) 등을 자기가 몇번씩 할 것을 정해놓고 그것으로 예수아기가 누우실 구유와 덮으실 이불·옷·깔개를 준비해서 탄생하신 구세주께 선물로 바친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신부님은 『요지움 아이들은 원걸 그렇게 힘든 일을 할려구!』하시며 입맛을 다신다.
이렇게 영적선물을 마련하기에 온 정성을 다 쏟으며 대림절을 보내고 드디어 2일이되면 학교 뜰안 담이나 나무가지에 호롱불을 매달아 그 불빛으로 마당 전체를 밝게 했다. 학생들은 열을 지어 성가를 부르며 초롱불 밑 마당을 빙빙 돌아다녔다. 자정미사가 끝나면 모두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간다. 거기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국이 기다리고 있다.
성탄과 음력 설날. 일년에 두번 밖에 못먹는 떡국이기 때문에 이들은 성호경이 끝나기 무섭게 신나게 먹어댄다. 정말 꿀맛 같다. 이렇게 귀하고 맛있는 떡국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이들 꼬마신학생들에겐 성탄은 그처럼 더욱더 기다려졌을지도 모른다.
자는둥 마는둥 성탄날 밤을 뜬눈으로 새운 꼬마신학생들은 몇달만에 하는 어려운 행사를 한단다. 그것은 종현대성당(명동)에서 대축일날 오후에 있는 성체강북에 참례하기 위해서 신학생 전체가 외출하는 행차다. 검정 두루마기에 미투리를 신고 머리는 종종딴 꼬마신학생들이 용산(지금 성심여고)에서부터 명동까지 걷는 것이다. 비가 오면 미투리는 나막신으로 바뀌고 서울태생 돈 많은 집 자제 중 한 두 사람쯤은 구두를 신기도 했단다.
▲尹신부=지금까지 성탄절을 보내며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역시 신학교 때지』하고 대답하는 윤 신부님 지금은 신병으로 휴양중이지만 젊어선 가톨릭 「매스콤」 분야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많은 활동을 하셨고 학교시절에도 학생활동을 한 것 같다.
몇학년때 성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구약에 나오는 「요셉형제」 성극을 했는데 거기서 파라오王 역할을 했단다. 한달 이상을 연습한 성극을 멋지게 공연하고 나면 기분은 절정에 달했고 게다가 자정미사 후에 나오는 떡국과 특별 선물로 배급되는 귤 하나씩은 왜 그렇게도 맛있었는지 모른다.
또 한가지 윤 신부님의 희미한 과거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는 추억은 신학교 뜰안 오동나무 가지가지마다에 촛불로 만든 사발등을 달아 마치 백화만 발한 이상으로 아름다웠던 그것이다. 전깃불은 있었지만 성탄날 밤만은 사발등을 달았단다. 사발등으로 밝혀진들 뜰안을 신학생들은 그것을 모두 하나씩 들고 성가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전깃불 보다는 촛불이 더 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 신부님이 서품 후 처음으로 성반을 지낸 곳이 서울 중림동성당이었다. 신부가 된 후의 성탄은 건강이 좋지 않은 윤 신부님에게 큰 곤욕을 치루는 때였다. 24일 오전엔 대재지키고 나면 오후부터 자정미사가 끝날 때까지 고해를 받아야만 했고 또다시 그때부터 25일 아침 10시 미사지낼 때까지 공심재를 지켜야만 했으니 약한 체질에 성탄만 지나고 나면 그후 며칠은 누워 앓아야만 했으니까, 지금은 성탄이 되어도 별로 기쁨을 모르겠다고 하는 윤 신부님은 『각 가정의 부모들은 자기자녀들이 거룩하고 고요한밤을 소란한 죄악의 밤으로 만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난 속에서 탄생하신 구세주의 밤에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준비한 음식을 먹이는 풍습을 한국에 세우기 위해 우리 가톨릭신자들부터 솔선수범하자고 재강조하면서 이번 성탄부터 성탄본래의 뜻대로 조용히 지내게 되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하신다. (玉)
李起俊 신부·尹亨重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