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2) 놀람 ⑧
발행일1969-03-16 [제660호, 4면]
국수집은 몹씨 붐비고 있었다. 현주가 박훈씨를 자동차로 모시고 왔으나 차로 찾아온 사람은 현주네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붐비는 국수집에서 친절치 못한 사환여자아이들의 천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가면서도 둘은 국수를 맛잇게 먹을 수 있었다.
『거 맛있는데…』
박훈씨는 현주가 인도한 곳이고 음식이라서 더욱 맛이 있는 것인가, 참으로 맛있는 국수를 먹고 이쑤시개를 쓰면서 말했다.
『그렇죠?』
손님이 맛있다니 현주는 무엇보다 기뻤다. 음식을 청할때 미리 현주가 먼저 돈을 아이한테 주었으므로 완전히 자신이 박훈씨를 대접한다는 의식으로 시종(始終)할 수 있어 그게 공연히 마음을 가볍게 했다.
『그렇군요… 한번 현주씨를 우리 고장에 모셔야 할텐데… 명물 음식도 대접하고…』
『대구탕이겠군요?』
현주도 찻종지를 들어 쯥즐한 국수 찻물을 마시고 나서 호호호 웃어보였다.
『대구탕이란건 서울에서 하는 얘기고…』
그러나 대구명물이 무엇인지 박훈씨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국수집에서 나와서다. 박훈씨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남아있군 차나 마실까요?』
현주에게 말했다.
『또 차요?』
현주는 다방에서 차를 먹는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직은 다방이란 무슨 사업을 한답시는 사람들이 득실거려 서류 쪼각을 내놓고 머리를 맛대고 쑥덕 공론을 하는 광경이 눈에 띄어 싫었고 더구나,
나이 위인 남자와 마주 앉아 지껄이는 자신이 어쩐지 떳떳치 못한 것처럼 느껴져 사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싫어요?』
현주가 얼른 동의를 하지않는 눈치를 채고 박훈씨는 말하더니
『알겠군요. 역시…』
서글픈 얼굴로 변했다. 그게 안됐다고 현주는 생각됐다.
『시간 있으면… 그럼 잠간만…』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큰길에 나와 아무 다방에나 들어갔다. 차를 청하고 나서 박훈씨는
『이번, 올라왔던 일이 거의 순조롭게 매듭지어질 것 같군요…』
느닷없이 말했다. 현주는 그일이란 것에 대해 일찍 박훈씨의 입으로 들어본 일도 없으나 스스로 그게 어떤거냐고 묻고 싶은 호기심을 가져 본 일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순조롭게 될 것 같다는데 아랑곳 않는체 하는 것도 실례될 듯이 순간 느껴졌다. 그래서 인사조로
『그래요? 그랬음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말했다.
『좋겠지요.』
하더니 박씨는 한참 말이 없었다. 현주가 위압을 느끼리만큼 무거운 태도를 오해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세와 태도는 차가 날러 오고 그걸 마신뒤까지도 계속됐다. 상대가 그렇고 보니 현주도 말이 나가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했다. 만약 내가 혜경이라면 재미있는 화제를 끄집어내 저 굳어, 무거운 박씨의 태도와 자세를 부드럽게 무너뜨릴 수 있을거라고….그러나 성격 나름이었다. 그렇더라도 무어든 말을 해, 딱딱한 분위기를 누구려야 된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현주의 입은 더욱 굳게 다물어지고 말았다.
얼마뒤에다. 박훈씨는
『일이 순조롭게 매조져진 뒤엔… 사회생활도 정리해야겠어요.』
혼자말처럼 뇌었다.
(사생활을 정리?)
『결혼해야겠어요.』
또 혼자말처럼 하는 발음이었다.
(어머… 결혼?)
까닭없이 뜨끔해지면서 박훈씨를 보니 그의 얼굴에 서글프고 처량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전에 편지에 앓고 있을때 집에는 아이들만 있고 간호하는 식모까지도 도리어 걱정만 끼치게 한다는 사연을 써보내온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역시…)
현주는 마음이 가누었졌다. 더욱 댓구할 말을 찾아낼 수 없었다. 다행히도 박훈씨가 또 손목시계를 보더니
『이젠 가봐야겠군.』
아마 오후에 볼일로 시간을 약속했던 모양이었다.
둘은 밖으로 나왔다. 갈라지면서
『그냥 오늘 오후차로 내려가겠읍니다. 내려가서 가시 연락하지요.』
박훈씨의 말은 사무적인 조로 변했다.
『안녕히 가세요』
현주도 그저 인사를 했다.
(내려가서 연락한다구?)
집에 돌아오면서 현주는 박훈씨의 말이 까닭없이 머리속에 뱅뱅돌아 사라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결혼하겠다구?)
그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가누어잡아졌지마는 지금 혼자 걷고 있노라니 그말의 중력(重力)이 또 무겁게 육박해왔다.
(어디 좋은 상대가 있는거 아닌가?)
그렇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내앞에서 결혼을 해야겟다고 말한게 아닐까? 경계하는 심정이 되던때와는 달라 현주는 공연히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어제밤 자동차 안에서 하던 말도 되새겨졌다. 좋은 보이프랜드가 있겠지 했겠다.
그러나 삼사일 지나고 보니 박훈씨에 대해서 또 답답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얘 오늘 미스터 주랑 너서낀 집에서 저녁 같이 먹자.』
아침에 혜경이가 더욱 환한 차림과 얼굴로 찾아와서 하는 말이었다.
『대구 출장에서 돌아 왔겠구나.』
『왔구말구. 출장가지 않았더면 벌써 그러려고 했던건데… 참 대구서 박 선생 만났대….』
혜경이가 무언가 뜻을 감춘 눈으로 현주를 보았다.
『그랬대?』
했을뿐 현주는 혜경이 만큼은 그 일을 대단하게 생각지 않았다.
『하옇든 오지? 와야해.』
『그러지.』
저녁무렵 정한시간에 현주는 혜경이 집으로 갔다. 주군이 벌써 와있었다. 혜경이와 셋이 우선 응접실에 앉아 다른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 청한 사람은 주군쪽의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