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人間像(인간상) ①
人間(인간)의 첫 課題(과제) 神(신)과의 再合一(재합일)
永遠(영원)함과 同時(동시), 時代的(시대적) 要求(요구)에 적응한 人間像(인간상) 돼야
現代(현대), 人間悲劇性(인간비극성)에 壓倒(압도) 調和(조화)된 人間像(인간상) 잃어
自由意志(자유의지)와 은총 두갈래 길서의 鬪魂(투혼)을
「그리스도敎 人間像」이라 해서 어떤 典型的인 人間像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앙은 戒律이기 전에 생활이라 했다. 따라서 古今 역사를 通해 위대한 영혼들이 그리스도란 궁극적 人間像을 지향코, 그 時代狀況안에서, 人間條件과 더불어 섭리 아래 신앙적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가장 個性的이고도 복음적인 人間像을 試圖 具現해갔다. 久遠의 人間像임과 동시 그 時代的인 지표가 된 이들의 발자취, 앞으로 數回에 걸쳐 그 信仰 · 思想 · 藝術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아담이 자신을 재발견한 것은 변화된 상황 속에서였다. 神과의 성약을 배신하자 그에게는 엄청난 현실이 전개되었다. 본성과 체질의 변화와 더불어 미래 운명의 선고 낙원에서의 추방 등이었다. 神에서의 이탈은 欲情에 양보하는 영혼의 혼란을 일으켰다. 추방의 도상에서 아담은 自省했다. 새로운 生의 條件이 부조되는 것이었다. 계약의 의미와 책임, 자유의 가치와 그 果敢, 인과의 법칙, 행위의 성실이 결과하는 내적 평화 이상적 판단의 高貴함 등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담에게 중요한 요인은 神과의 再合一이었다. 分離에서 合一에의 길을 향하여 다시 고투해야 했다.
그는 雙頭馬車를 운전해야 했다. 自由의 의지와 은총의 마차였다. 이리하여 아담과 함께 인류에는 역사가 생긴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만으로는 자기를 완성할 수 없다.
완성의 길에는 神의 協力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은총이란 神의 부르심이다. 神의 은총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約束을 하였다.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이며 우리가 이상하는 인간의 인간상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에는 아담이 체험했던 유혹이 늘 대기하고 있다. 유혹의 모습은 언제나 자유의 선택의 갈림길에 나탄나다. 선택은 神의 限界이다. 인간의 尊嚴을 보장하기 위한 神 스스로 정한 그이의 한계이다. 역사는 자유의 선택의 물음과 그 對答史이다. 상황에 따라 자유의 물음은 언제나 변화했다. 그리하여 對答史는 너무도 엄청난 수의 回路를 提示해 버렸다. 合一에의 길은? 그리스도에의 길은? 自由의 實現은?우리는 神의 섭리 인간의 비극성(조건) 자유의지의 그 어느쪽에선가 좌절되어 고민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안간조건의 비극성에 압도되어 한편은 神의 섭리를 부정하고 한편은 자유의지의 노력에 절망하고 있다. 반세기의 인류사는 짜장혼란이다.
두아멜, 아랑, 로만 로랑, 발뷰스, 말탄 듀, 가일 등이 제1차대전의 비극에 흔들리고는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발전하게된 이후, 쥴 로망의 희망은 불안에 물들렸고 뽈 바레리는 회의의 유혹에 시달렸다. 그리스도교의 사상가들도 인간의 운명에서의 영원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과이 조화에 고뇌하게 되었다.
레온 부로와가 인간의 역사에서의 섭리이 역할을 중시하여 神의 의지를 받든데 대해 샤르르 빼기는 영원적인 것이 시간적인 것에 개입하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끄로델은 한때 그 시대를 저주한 후에 모든 것은 섭리의 계획대로 끝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데 대해 베르나노스는 역사의 필연성이란 사념에 반발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에 그 책임을 지우게 하는 문명을 요구했다.
죠레스와 레오 부름은 인도주의적 사회주의로 인류를 구하려고 꿈꾸었다.
공산주의는 인류의 운명을 黨에 의탁시켰고 실존주의자는 神의 섭리를 부정하고 세계의 不條理性에서의 자유와 우연과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렇게 현대인인 우리는 인간조건의 비극성에 흔들리어 조화있는 인간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에게는 聖書의 인간상이 있고 위대한 聖人들과 神學者와 藝術家들의 인간상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時代的인 인간상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永遠한 인간상인 同時에 그 時代가 요구하느 인간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형성해야 할 국면에 처해 있다. 18세기 이후 純理主義적 정신에 의해서 형성된 인간상이 파괴되어가는 이 역사적 상황에서 그리스도교가 提示하는 인간상이 현대에 받아들여지느냐 안지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현대에서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인간상은 적어도 기계문명의 진보와 함께 기계화 되어가는 위험 속에서 떨고 있는 現代人, 어느 時代보다도 강력한 공동체를 요구하고 있는 현대인, 허무주의와 비관주의에 떨어지고 있는 現代人 유물변증법의 숙명을 받아들이려는 현대인, 이런 모든 현대의 깊은 요구를 분석한 뒤에 세워진 복음적(기쁨의) 인간상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도표를 발견하기 위하여 현대를 중심하여 고금의 작가들이 追求한 인간상은 요령으로나마 알아보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 이 계획이다.
金榮秀(文學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