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사업서 본 자선의료사업 ㊤
傳敎(전교),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
첫 목적, 불우환자에의 의료혜택이나
救料患者(구료환자), 有料患者(유료환자)보다 푸대접의 모순
患者(환자)들 “치료는 有料(유료), 計算(계산)은 無料(무료)”를 願(원)해
구호사업이라고 하면 대개 일부 부유하고 마음씨가 착한 사람들이 보다 불우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돕기위하여 베푸는 자비롭고 희생적인 행위로 생각한다. 상처입은 왼손을 어루만지는 오른손을 보고 자비롭다든가 희생적인 행위라는 사람은 없다. 구호사업 역시 한 조상으로부터 퍼져나온 대가족 중 불행한 처지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 이웃 형제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쳐주는 인류공동체 자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본능적이며 의무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 본능감각이 둔화되거나 마비되었을 때는 마치 신체일부의 상처를 느낄 수 없는 육체처럼 그 사회 전체가 멀지않아 쇠퇴하고 마는 예는 멀리는 로마제국에서 가까운 예로는 로서아제국의 말로에서 볼 수 있으며 특히 후자의 경우 반작용으로 대두한 무서운 폭력주의로 인하여 전세계가 막심한 고통을 오늘날까지 받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자선사업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계하고 있는 인사들이 자선사업을 현세에서 또는 후세에서의 어떤 보상을 대상으로 하는 일시적인 희생으로 잘못 생각하고 이 일에 종사할 때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우열관계가 생기며 소위 도움을 주는 자는 값싼 자기만족과 우월감에 빠지게 되며 받는자는 받는 위치에 놓인 자기자신을 열등시하며 이와같은 심적 부담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도움을 준 자에게 도리어 반발하기도 하는 현상을 우리는 가끔 본다.
자선사업이 인류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당연하고 의무적인 행위라는 원칙은 자선의료사업의 경우 더욱 명확해진다. 이웃집에 병에 걸려 치료 못받는 사람이 있을때 그 부근 사람들의 건강이 곧 위협을 받게된다.
자선의료사업의 목적은 경제적 이유 혹은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질병의 치료를 못받는 불우한 사람들에게 의료의 혜탹을 제공하는 것이 첫째이며 어떤 종교의 전교나 어떤 단체의 선전 등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다. 더욱이 자선의료사업을 그 수입의 사용처가 어디이든 간에 영리를 목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의료사업은 본래 「인술」이라 하여 경제문제와는 거리가 먼것 같으면서도 적절한 치료제공을 위하여서는 고도의 기술과 고가의 치료자재 그리고 시설을 필요로 하게됨에 따라 자선사업중 의료사업은 경제적 문제가 항상 수반한다.
자선의료사업의 경비는 대개 독자가들로부터 기증되는 헌금 약품 및 치료자재로 충당하나, 특수한 만성질환 즉 결핵 나병 등의 호나자를 취급하는 사업은 별도로 하고 대개 유료환자치료에서 오는 수입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따라서 자선병원이면서도 일반 영리적인 병원과 마찬가지로 유료환자를 취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극빈환자를 위한 자선병원이면서도 유료환자 없이는 구호환자 치료가 불가능하게 되며 자연 유료환자를 우대하며 첫째 대상인 무료환자가 실지 병원측은 그렇지 않더라도 본인 자신을 불청객같은 열등감 속에서 치료를 받게된다.
치료 그 자체를 위주로 하려는 의사진과 병원 재정을 걱정하는 운영진이 한 무료 환자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경우 의사진은 인술의 시술자처럼 보이고 서무경리진은 수전노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무료환자와 유료환자의 한계점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가장 곤란한 문제중의 하나이다. 본인이 약4년간 자선의료사업단체에 종사해본 경험으로 같은 병원에서 구호와 유료환자를 동시에 취급할 때 일어나는 여러가지 애로를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자선병원을 찾는 환자 거의 전부가 『치료는 유료환자로, 계산은 무료환자로』 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상의 애로 외에도 구호용으로 면세도입된 약품 및 의료자재가 무료환자 아닌 유료환자에게만 씌여질 때, 극단적인 예로 일부 고가약이 유료환자에게만 씌여질때 여러가지 도의적 그리고 법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대개의 자선의료사업이 무료치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일반 긴급한 사태가 지나면 계속적인 자금투입이 곤란을 느끼게 되어 자연히 자체수입을 모색하게 된다. 병원을 찾는 환자중에는 치료비에 개의치 않고 높은 수준의 치료를 받기 위하여 모여들게 된다. 여기서 유료환자로부터의 수입을 무료환자치료비에 충당한다는 가능성과 정당성을 발견하고 별다른 난관없이 유료환자 취급을 시작하게되나 실지로 부닥치는 여러가지 곤란은 앞서 말한바와 같다.
대개의 한국가정은 질병같은 불의의 재난에 대비하여 저축을 해두는 예가 극히 드물다. 선진국가에서처럼 의료보장제도도 없으니 병에 걸리면 항상 경제적 문제가 수반된다. 대다수의 서민은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는 가혹한 현실에 놓여있다.
병에 걸리면 첫째 경제적 문제로 병원 가기를 미루고 미루다 보니 병이 악화하고 하는 수 없이 고리채라도 얻어서 병원문을 두드릴때는 병이 나아도 거액의 고리채에 계속 허덕이게 되고 환자가 죽을 경우, 특히 환자가 가장인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비참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며칠전에 진영성모병원에 갔을때 이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중병에 걸린 아버지와 수술비를 대기 위하여 논을 팔겠다는 아들, 아버지는 나머지 식구들의 장래생활을 걱정해서 입원을 끝내 거절하다가 끝내 『어차피 나는 여생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너희들이나 좀 낫게 살아라』하시며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돈 걱정에 병을 기르고 할 수없이 병원에 가서는 고가의 치료비를 물다가 그 결과로 구료환자로 전락하는 이 현상을 타개하는 길의 하나로 나는 상호의료보험제도의 개척을 건의하고 싶다.
만일 자선병원들이 의료보험제도를 과감히 개척하여 많은 서민층들이 매달 소액의 보험료를 미리 부담해가며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해 나가지 않으면 자선의료사업은 장의사사업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건강한 복지사회건설에 기여한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강정열(가톨릭구제회 부산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