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3) 놀람 ⑨
발행일1969-03-23 [제661호, 4면]
『왜 아직 오지 않을까?』
주군의 남자친구가 얼른 나타나지 않았다. 혜경이 공연히 조급한 마음으로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오겠죠』 혜경이 조급한데 반해 주군은 여유를 보이면서 빙그레하다가
『참 박 선생이 현주씨에게 문안하더군요』
현주를 보고 말했다.
『만나 보셨다지요?』
현주는 혜경이로부터 들은 말을 생각하면서 되물었다.
『예』 하더니 주군은
『화상(畵商)을 하고 있더군요』
하고 또 뜻있게 웃어 보였다.
『화상?』
현주는 새삼스럽게 그동안 박훈씨의 직업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갖고있지 않았음을 생각해내면서 되뇌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몰랐던가요?』
주군이 눈을 크게 뜰싸하고 현주를 보았다.
『예』
『어머. 너 정말 몰랐니? 거짓말 그런법 어디 있어? 오렌 펜팔이잖아? 몇번 만나기두 했구. 그러구두 상대편 직업두 모르고 있었다니…너 고 새침… 누굴 속일려구…』
혜경이 잠자코 있지 않았다.
『정말이야.』
『이치에두 맞지않는 말 작작해요. 말두 안돼구 뭐야.』
『그래두 얘.』
『하하, 그럴수도 있지뭐요? 원체 박 선생의 성격이 자신을 얼른 들어내려 하지 않는 것 같고 현주씨는 또 현주씨대로 공연히 말하지 않는 상대방의 직업이며 사생활 같은걸 물으려고 하지않구… 뭐 혜경이 하구는 성격이 판이하니까…』
주군이 현주를 위해 변명한다는게 그만 혜경이의 비위를 거슬려 놓고 말았다.
『그럼 난 수다장이란 말이에요?』
샐쭉해 주군을 흘겼다.
『그건 또, 누가 수다장이랬고?』
주군이 받았으나 혜경이는
『그런말이지 뭐얘요?』
『하하?』
『난 수다장이얘요. 할 수 없어요. 수다장인걸 이제 어떡하란 말이얘요?』
혜경이 일부러 주군을 할키느라고 그러는 것인지, 응석을 부린다는 심정에서인지, 정말 주군의 말이 비위에 거슬려서인지 분간 못할 어조로 말했다.
『하하?』 주군이 유순한 중에도 딱하다는듯이 발음하는 것을 현주가
『아이유, 얘두, 넌 너무 과민해 못쓰겠어 내귀엔 조금도 그렇게 들리지 않는구나.』
이렇게 말하는데 주군의 남자친구가 들어왔다. 최호진이었다.
『아, 늦어 미안합니다.』
최호진은 주군에게 보다, 혜경이와 현주를 보면서 머리를 끄떡하고 겸연적게 웃었다.
『아이, 얼머나 기다렸다구요.』
주인의 체면으로는 이렇게 말해서는 늦어온 손님에게 실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혜경이는 서슴치않고 이런 말을 하고, 다음 순간엔 그걸 뉘우친 모양이었다.
『그대신 새 사실을 알았어요.』
하고 애교담뿍 웃어보았다.
『새 사실이라니요?』
최호진은 앉으면서 되물었다.
『아주 중대한 사실을…』
혜경이는 새 사실이 무엇임은 말하지 않고 도리어 최호진의 호기심을 돋구어 주는 말을 했다.
『중대한 사실?』
하더니 최호진은 머리를 기우뚱거렸다.
(혹 내 얘기는 아닌가?)
최호진은 사실 은근히 현주의 인상을 좋게 간직하고 있다. 그런 것을 눈치채고 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혜경이가 의문을 남겨놓은채
『자, 준비가 다 됐어요.』
그리고 일어서서 식당으로 손님들을 인도했다.
대회사 사장주택답게 혜경이네 집은 양옥 문화주택일뿐 아니라 식당도 그런 집에 손색이 없으리만큼 잘차려놓고 있었다. 어지간한 호텔 그릴에 들어간 것보다 훨씬 좋고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식당이었다. 넷은 적당하게 앉았다.
최호진이나 현주뿐이 아니었다. 두 사람보다 훨씬 여유있게 살고 있는 주군도 약간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차린게 없는데…』
혜경이의 어머니가 들어와서 인사말을 했다. 사위가 몹시 사랑스러운 모양 연성 주군을 보기만 했으나 혜경이의 소개를 받은 최군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결혼을 했어요?』
느닷없이 물었다.
『아직은…』
최군이 까닭없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아이유 이런 좋은 신랑감이 아직두 결혼하지 않았다니… 얼른 좋은 자리가 생기면 결혼하기로 해야죠. 결혼하구 볼일이니까…』
딸의 수다가 엄마의 유전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혜경이 모친은 현주에게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너희들 둘이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은 시선의 움직임이었다.
현주는 또 까닭없이 얼굴이 화끈해졌다.
어머니가 나간뒤에 음식이 날려들어왔다.
사위를 먹이려고 아마 장모님께서 정성을 다한 모양으로 음식은 내용도 좋았으나 그릇이며 모든 것이 최고급이었다.
『자!』
혜경이는 주군에게뿐 아니라 현주나 최호진에게는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느냐를 자랑하듯한 얼굴로 음식을 권했다.
아무말도 없이 셋은 식사를 시작했다. 혜경이는 그냥 들떠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