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4) 놀람 ⑩
발행일1969-03-30 [제662호, 3면]
식사가 끝난뒤 넷은 응접실에 돌아와 다시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혜경이는 여전히 명랑했고 주군은 여전히 싱글벙글 유순한 것을 풍겨주고 있었다. 현주는 현주대로 여러가지 생각이 까닭도 없이 머리속에서 빙빙돌고 있었다.
우선 혜경이네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되살려져 그것이 새로운 발견인듯이 생각하게 됐고 박훈씨가 지금까지 자신의 직업이나 가정형편을 통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공연히 머리에서 떠나지지 않았다.
혜경이 까불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지껄이는 말을 들으면서 현주는 공연히 이자리가 불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가장 불안하고 초좋나 것은 최호진군이었다. 처음 현주르 주군의 약혼피로장에서 보았을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림을 어쩔 수 없었다. 사양하면서 마침내는 일어나 노래를 부르던 행동거조며 다방에서 마주앉았을 때의 「매너」며 짙은 인상으로 머리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최군은 그런 자신의 심정을 주군에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랬는데 주군이 최군을 오늘의 이 자리에 참석시켰다. 혹 그걸 눈치챈 것은 아닌가? 최군은 먼저 이런 생각으로 불안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현주에 대한 호감은 더욱 짙어갔다. 오늘이 현주와는 두번째로 함께 가진 자리였다. 그러나 주군의 약혼식날에 미쳐 발견못했던 현주의 좋은 점이 새롭게 발견되어 좋아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변하고 있엇다.
(그런데 혜경씨의 어머니가 이상해)
아까 식당에서 이상한 말을 하고 최군 자신과 현주에게 함축이 있는 시선을 던졌던 사실이 더욱 크게 떠올랐다. 그 혜경이의 모친에게 달려붙고 싶은 심정이 치밀기도 했다.
이윽고 아홉시가 지나 헤어지기로 했다. 자가용차가 혜경이네게 있었으나 그건 아버지가 쓰고 있으므로 택시를 잡지 않아서는 안되었다. 택시는 길에 나서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주군이 맨구석에 앉고 현주가 가운데 앉고 그옆에 최군이 앉았다.
차가 움직였다. 속력을 느끼면서 최군은 이렇게 현주 옆에 앉아 달린다는 사실에 황홀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현주도 아무 말이 없고 주군도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최호진 군의 성격은 여흥의 사회를 할때처럼 명랑하고 익살스러운 일면이 있는 반면에 지극히 수줍은 구석이 있다.
자신이 아무런 저의(低意)를 갖지 않고 남을 대할때에는 명랑성과 익살이 십분 발위되나 조금이라도 목적이나 계획을 가지고 대할때에는 지나치게 내향적인 최호진군의 성격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랄 수 있었다.
이점은 최군으로 하여금 세속적인 출세에 지장을 주는 대신, 원만한 인격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어 그의 주변에는 그를 아껴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떻든 지금 최호신군은 여느때보다도 더 수줍고 내향적인 심정이 되어, 그져 차가 움직이는대로 질긋이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그게 현주로서는 이상하게 여겨졌다. 혜경이의 약혼식날 여흥을 사회하던 최호진과는 아주 딴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침울하다고까지 보여지는 최군의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에게 호의가 가지거나 특히 관심이 돌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 저기 세워주시오.』
차가 광화문 로타리를 돌게되자, 최군이 운전수에게 말했다.
『내리려구?』
입을 다물고만 있던 주군이 물었다.
『여기 내려서 어디잠깐 들렀다 가려구…』
『그래?』
차가 주차점(駐車点)에 서자 최군은 얼른 문을 열고 내리면서 그제야 현주에게 강력한 시선을 던지고
『다시 뵙겠읍니다.』
그리고 탁밖에서 문을 닫았다. 현주가 『안녕히』하기전에 차는 움직였다.
『최군 참 좋은 사람입니다』
최군이 없는 자리니까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듯이 주군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것 같애요』
『명랑한 며이 있으면서 굉장히 수줍은데가 있어요.』
『그렇군요. 여흥때와 오늘은 아주 딴사람 같은걸요』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존잽니다.』
『…』
『사귀보시지요』
주군은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농담처럼 발음했으나 현주는 응, 이 말을 하려고…. 최호진이 중간에서 내린 것도 무슨 연극이었고 더구나 오늘저녁 그자리에 그를 참석케 한 것도, 혜경이의 어머니의 언동 등이 모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지 않아도 호감이나 관심이 가지지 않는 최호진이 까닭없이 싫어졌다.
『그것보다두 박 선생 지나시는 얘기나 하세요.』
화제를 딴데 들리기 위해서 현주는 이렇게 말했다.
『박훈씨 말인가요?』
『대구에서 만나셨다면서요?』
그리더니
『그분, 혼자 사시더군요.』
그리고 힐끔 현주를 보았다.
『……』
『그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는데, 부인은 없고 어린 식모아이가 음식을 만든 모양인데… 그건 그렇구 퍽 깨끗하게도 살더군요.』
현주는 그러리라 짐작은 한 일이었으나 주군이 그점을 집어 이야기 하는게 도리어 현주 자신을 박훈씨와 관련시켜 오해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 선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