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에 대해서 정하여진 구실, 아마 시인으로서 또는 예언자로서 그렇지 않으면 화가로서 또는 그 밖의 어떤 구실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헛일이었다. 나는 詩를 짓기 위해서 예언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 외의 어떠한 사람도 그런 일을 위해서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다만 수반하여 이어나는 것이었다. 각자에 있어서의 진정한 사명은 다만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일이었다.
옳지! 그가 만약 시인으로서 또는 광인으로서, 또는 범죄자로서 끝날지라도 그런 것은 관계없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결국은 중대한 관심사가 아니다. 그의 문제는 자기 자신의 특징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 속에 있어서 완전히 망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내는 일이다.
그이외의 것은 모두 중도(中途)며 반조각이다. 도피의 시도다.
그 여인의 시선은 실현이며 그 여인의 인사는 귀향을 의미하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그 여인 앞에 내밀었다. 그 여인은 꾸욱 힘있게 따뜻한 손으로 나의 양손을 잡았다.
『당신이 싱클레어지요! 곧 알아차렸어요. 잘 오셨읍니다.』
그 여인의 음성은 저음이며 따뜻하였다. 나는 단포도주 처럼 그 음성을 마셨다.
그리고서 이번에는 나는 눈을 들어 그 여인의 조용한 얼굴 검은 신비적인 눈 싱싱하게 성숙한 입, 「표적」을 가진 넓다란 위엄있는 얼굴을 보았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읍니다』나 그는 그 여인을 향해 말하고 손에 키스를 하였다.
『나의 이때까지의 전생애는 언제나 그냥 도중인 듯한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지금 간신히 집에 온 것입니다.』
그 여인은 어머니와 같은 웃음으로 두 볼이 방싯했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읍니다』하고 그 여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화해하는 길이 교차되었을 때는 전세계가 잠시 동안 고향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헬만헷세=고난에 찬 求道者로서의 긴 생애를 통해 헷세는 끊임없이 내면에 귀기울이며 生의 해방과 영혼의 탐구에 몰두한 신비가요 전통적 낭만작가이며 평화주의자다. 독일문학가로서 그는 한때 동양사상에 심취하여 「싯달따」로 인도철학과 그의 세계관과의 조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말년 스위스 「루기노」호반에 정주하여 내적 신비를 추구한 「유리알 遊戱」를 완성 1946년 「괴테」상과 「노벨」상을 받았다.
『「데미안」이 표현하고 있는 人間像은 한 靑春의 고뇌의 像이다.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고 죽음에 의하여 자기의 운명을 성취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