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㉕ 無宗敎(무종교) 주위엔 信仰人(신앙인) 책임
信仰(신앙)의 無節操(무절조)보다 無宗敎人(무종교인)의 信念(신념) 갖고
발행일1969-04-06 [제663호, 4면]
人間이란 多少의 差가 있을뿐 누구나 精神的으로 弱하고 또한 孤獨하다. 그래서 무엇엔가 依支하고 싶고 絶對的인 權能에 自己自身을 떠맡기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 宗敎의 必要性이 있고 信仰의 價値性이 있다고 無宗敎인으로서 나는 생각한다.
病들고 逆境에 處해있을때 依支하고 依託할 存在가 없다면 얼마나 「더」많은 人生들이 「더」 不幸하고 「더」 悲慘할 것인가? 그리하여 누가 말하였듯이 『神이란 정말 存在하지 않는다면 하나만 들어 놓아야 할 存在이다.』란 말에 나는 完全히 同意하고 있다. 그런 意味에서 볼때 眞實로 信仰에 心醉하고 모든 것을 神의 뜻으로 돌리는 사람 特히 複雜한 理論을 떠나서 無條件 믿는 분을 나는 부러워한다. 그분은 어느모로나 나보다 쉽게 마음의 平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분을 그지없이 부러워하면서도 나 自身은 宗敎를 갖지못하는 것이 안타까움은 웬일일까? 내가 아직 悲慘한 地境에 이르지 않아서일까? 내가 그들보다 마음이 强해서일까? 決코 그래서 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와 집안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佛敎가 新羅時代부터 傳來하였지만 近世의 우리民族은 李朝時代에 孔孟의 儒道가 盛行하고 主로 無宗敎의 狀態에 있었음이 事實이다. 따라서 父母님을 包含해서 나의 가까운 祖上들은 전부 無宗敎人이었다. 그것이 퍽 큰 比重으로 作用하여서 나는 結局 無宗敎人일 것이다.
또한가지 나를 無宗敎人으로 만든 責任은 失禮이지만 나의 周圍의 「宗敎人 또는 信仰人」들이 져야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宗敎와 宗敎人은 區別되어야 하지만 赤是 어떤 宗敎에 接近할 때 自然 살펴지는 것이 그 宗敎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相從할때, 果然 信仰을 가진 분이라 나같은 無宗敎人보다는 낫구나 하여야겠는데 그런 期待보다도 오히려 失望을 느기게 되는 것은 나만 無宗敎人으로서의 나의 偏見일까? 그들의 겉으로의 親切인 「僞善」과 나만 救濟받을 수 있다는 選民意識에 가까운 「利己主義」가 내가 學窓時節에 宗敎의 좋은 분위기에 接하려고 할때 마주쳐지는 障碍物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周圍의 많은 宗敎를 믿는 분들이 그 宗敎가 生活 속에 스며들어 있지 못하여 假令 基督敎人이노라 하는 분이 事理判斷에는 儒道的이고 善惡觀念은 佛敎的이고 急한 地境에서는 「샤마니즘」에 빠져있기조차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볼때 果然 내가 지금 갑자기 어떤 宗敎를 갖는다고 假定하더라도 정말 내가 그 신앙에 專心할 수 있을까 하는 懷疑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出生과 成長過程에서부터 어떤 宗敎의 분위기에 빠져서 어려서부터 生活化되어야 정말 신앙다운 신앙을 갖게되는 것이 아닐까?
몇가지 理由를 드는 척 했지만 嚴格한 意味에서 信仰을 갖고 안갖는데 理由가 있을 수 없다. 神의 存在를 肯定하는데 理由를 드는 것도 우습거니와 否定하는데 理由를 드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 肯定이나 否定을 主張할 수는 있으되 證明할 사람이란 存在치 않기 때문에 이는 마치 平行線과 같은 것이리라. 다만 無條件 믿거나 안믿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 靈魂不滅說도 그렇다.
腦의 機能이 意識과 모든 思考와 關係되는데 英魂의 존재를 알길도 없다.
어떤 사람은 數週日間 昏수狀態에 빠져있기도 하는데 果然 靈魂은 그동안 어디를 散策하고 있는 것일까?
無宗敎人으로서 先天的으로 또는 어려서부터 宗敎를 갖지못하였음은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旣往에 無宗敎人이 된바에야 宗敎를 否定함도 하나의 信念이다.
혼히 宗敎를 무슨 職業처럼 茶飯事로 바꾸는 節介없는 사람도 많고, 無宗敎人이 老年에 가서야 宗敎入門을 새삼스럽게 하는 例도 많은데 後生의 有能하신 審判者도 그런 節操性과 간사함은 洞察하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끝내 無宗敎를 信念으로 지낸 사람이 자그마한 賞이라도 받을지 모를 일이다.
나도 앞으로 어떤 歷程을 밟고 어떤 心境의 變化가 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로되 臨終에 聖職者인 親舊가 위문을 온다면 기꺼히 맞이할 것이로되 領洗를 준다고 하면 이를 斷乎히 拒否할 信念만은 잃지 않고 싶다는 것이 나의 現在의 所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