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33) 돌아와서 ⑦
발행일1969-08-17 [제681호, 4면]
주택영단에서 지은 집인 모양이었다. 같은 규격의 단층집이었으나, 그다지 넓지 않은 마당을 박훈 교수는 자연스럽게 잘 가꾸어 놓았다.
무엇보다 포도넝쿨 밑의 잔디밭은 때가 포도의 계절이라 주룽 주룽 매달린 청포도알과 더불어 단순하면서 풍성한 느낌이 들게 했다.
박훈 교수는 Y 교수와 현주를 대견하게 맞았다.
『왜 부인은?』
Y 교수의 부인도 함께 청한 모양이다.
『대목장날에 행금통을 깬다고 막내 놈이 탈이나서…』
『어떻게 탈이 났게?』
Y 교수의 막내면 딸이다, 중학교 일학년이었다.
『학교에 싸가지고 간 도시락이 잘못된게 있었던 모양, 배탈인데, 그것 밖에 원인이라곤 없거든…』
『거 안됐군. 그럼 오늘 학교 못갔겠군.』
『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낑낑 거리면서 않는데…』
Y 교수는 워낙 대범한 성격이라 그래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현주는 은근히 박훈씨의 부인을 보려고 살피였다. 물론 인사를 시켜줄 터이지만, 그전에 보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나무랄 수 없었다.
정말 현주를 주변으로 모신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 Y 교수 외엔 다른 손님을 하지 않았었다.
셋은 역시 조촐하나 박훈씨의 체취가 배어 있는 방에 앉아 이이야기 저이야기 Y 교수와 박훈 교수가 만나면 끝이 없는 화제를 놓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현주는 방안을 두리번 거리다가 문득 높은 책장 옆에 가려 얼른 눈에 뜨이지 않는 그림을 발견하고 깜짝놀랐고 가슴이 두근거림을 깨달았다.
그것은 대학때 미술반전람회에 출품했던 그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상세한 평을 적어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펜팔을 하게 됐고 펜팔이 청혼에까지 발전했던 그 인연의 그림이었다.
(저 그림 어떻게 입수해 걸어놓고 있을까?)
현주는 십여년전의 일을 기억을 더듬어 회상해 보았다.
물론 그림을 사간 사람이 없었다. 대체로 그 전람회에 출품했던 그림은 한점도 팔리지 않았었지. 얼마동안 그 그림은 현주 자신이 간직해 두었던 것은 기억에서 떠오르나 그 후엔 아리숭 했다.
아마 후배인 미술반원이 무슨 기념으로 그 그림을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옳지 미술대학에서 전교 미술전람회를 하게 됐는데 공대에서 내놓을 작품이라고 없으니 그 그림을 출품하는 것으로 창피나 면하자고 굳이 빼앗아갔던 일이 있은 듯 하긴 한데…)
현주가 막 졸업한 임시였다.
그땐 현주의 그림에 대한 일시적인 정열이 식어져 있었으므로 후배가 가져간 그림을 찾을 맘도 내지 않았고, 졸업한 뒤에는 연락도 끊겼으므로 무관심 속에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그림이 박훈씨의 서재에 걸려있다. 현주는 자신의 십여년전의 모습을 보는 듯, 그러면서 박훈씨의 심중이 다시금, 알려지는 듯, 와락 눈물이 솟구침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억지로 참았다. 눈물을 참는 것뿐 아니라 그 그림에 대해 묻고 싶은 말도 참아버렸던 것이다.
만약 현주가 지금의 나이가 아니고 십년전 아니 적어도 8년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그림을 이 자리에서 발견했다면 『어머 저 그림 어떻게 입수하셨어요?』하고 깡충깡충 뛸 듯이 들까불었을 것이었고 마음에 있는 것을 별로 억제함이 없이 털어 놓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주는 스스로 자신의 나이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저 그림을 지금도 그냥 걸고 있는 건 지금도 나한테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표시가 아닐까?)
그럼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현주는 나른해졌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을까? 어디 몸 불편한건 아니오?』
Y 교수가 현주를 보고 말했다.
『아픈데 없어요.』
『그런데?』
『좀 피곤하군요.』
『그렇겠지 교단에서는 일, 우리들은 익숙해 식은죽 먹기지마는 처음은 고되지…』
Y 교수는 현주의 심중을 알면서 그러는지 이런 말을 하고 껄껄껄 웃었다.
이윽고 상이 들려 들어왔고 식사가 시작됐다.
Y 교수와 박 교수는 술부터 시작했고 현주 앞에도 술잔을 놓고 술을 따랐다.
현주는 구태어 못 마신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따라 주는 대로 맡겨두었다.
그제서야, 박훈씨의 부인이 방안에 들어왔다.
듣던 대로 몹시 수척하고 병색이 얼굴에 드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Y 선생님 오셨읍니까?』
말소리도 나직하고 힘이 없었다.
『편치 않으신데, 나오시긴요. 그래요. 좀 어떠십니까?』
『늘 그 모양입니다.』
하더니 박훈씨 부인은 현주를 보고
『윤 선생님이신가요? 집 선생님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용신(用信)이는 늘 말했구요.』
그 말소리도 힘이 없었다.
『윤현줍니다. 병환이시다니…』
밑의 말은 흐므러 버렸다.
그러면서 현주는 <용신이?>하고 입속에서 뇌였다.
부인은 겨우 인사를 한 후에 곧 나가버렸다.
식사가 착착 진행됐다. 현주의 마음은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