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5) 놀람 ⑪
발행일1969-04-06 [제663호, 4면]
집으로 들어가는 큰 길목에서 내리겠다고 했으나 주군이 억지로 집앞까지 태워다주어 현주는 집앞에서 내렸다.
『미안합니다.』
현주가 인사를 하자 차는 빽해서 내빼듯이 달아나 버렸다.
방안에 들어오니 책상위에 Y 교수로부터 편지가 와 있었다. 봉함편지였다. 뜯어보니 간단하게
<…현주군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게되는 일인지 모르니 한번 날 만나도록 해주지. 될 수 있으면 속히…>
현주는 그게 무엇일까? 알고도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는 심정이었다. Y 교수에게 좋은 일이라고 인상이 지어지게 만든 일은 어디 해외로 나가 공부를 더 하겠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아마 그 일에 가능성이 생겨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체 무거운 성격의 Y 교수가 짤막하나 명랑한 것을 감춘 편지를 써보냈을 바에는 일에 확실성까지 있는지 모르겠다.
현주는 기뻐 우선 깡충 뛰어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게 그렇게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책상에 마주앉아 복잡한 생각에 잠기고 있을뿐이었다.
이튿날이었다.
현주는 우선 Y 교수에세 전화를 거었다. 집에 거니 학교에 나가는 날이라 지금 학교에 계실거라고 사모님이 친절히 말해주었다.
학교에 걸었다. 그러나 강의 중이라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전화받는 사람은 조교일 것이고 조교는 현주도 잘 알고있는 청년이다. 제 이름을 말하고 Y 교수가 나오면 다시 걸겠다고 일러달라고 말하려 했더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까닭없이 배신당한 것 같은 심정으로 현주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소식이란 좋지않은 소식일지도 몰라, 어째 기분이 개운치 않을걸 보니…』
현주는 투덜대는 마음으로 거리를 목적도 없이 싸다니다가 발이 저절로 향해진 곳이 역시 학교였다.
Y 교수의 방문을 노크하니 이때에는 마침 방에 있었다. 아까의 배신당힌듯했던 마음이 가셔지면서 방안에 들어가 오랫만에 만나는 Y 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잘왔군. 미상불 기다렸지. 전화나 걸어주지 하마트면 나갈번 했는데…』
현주는 전화를 걸었다는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았다. 아까는 교수실에 걸었는제 지금 찾아온 곳은 연구실이다.
공연히 전화 이야기를 하게되면 가시려던 그 불쾌감이 다시 머리를 들 것 같애 잠자코 있은 것이다. 연구실에는 남학생 둘이 앉아 있었다. 후배라 아는 얼굴들이었고 학생들도 아는체 했으나 현주는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아 그저 목례로만 그들에게 인사의 뜻을 표했다.
『앉지』
했다가 Y 교수는
『그러지 말구 함께 나가자구. 막 나가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리고 가방에 책과 참고문헌인가를 주워넣고 일어섰다.
『그럼 자네들은 공부하다가 문을 잠그고 가게… 그냥 내가 돌아올때까지 있어두 좋구, 두시까지는 올꺼니까…』
Y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남겨놓고 현주더러
『자, 가지.』
그리고는 앞장을 서서 내빼듯이 복도로 걸어간다. 현주는 그 뒤를 달리듯이 쫓아갔다.
교문밖에 나와서 Y교수는 팔목시계를 보더니
『삼십문쯤 이야기할 시간이 있어.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면서…』
아마, 다른 학교에 강의가 있는데 점심을 먹고 그리고 가기로 시간을 짜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더라도 현주는
『전 점심은… 먹었어요.』
사양의 말을 했다.
『내가 먹는거야.』
Y 교수는 무뚝뚝하게 말하면서 부근에 잇는 대중식사 일식집으로 역시 앞장을 서서 들어갔다.
이층의 조그만 방을 일부러 택해 Y 교수가 들어간뒤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먹는거』라고 했을때와는 달리 음식을 현주의 것까지, 현주의 의사도 묻지않고 청했다.
그리고
『1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이야기부터 해야겠는데…』
하더니 담배를 붙이면서
『현주군두 이젠 결혼해야 될거 아닌가?』
이런 말을 했다. (결혼?) 현주는 너무도 뜻밖의 말이었다. 그러면 유학문제는 아니었던가?
뜻밖의 말에 놀랐으나 그걸 감추려는 현주의 표정을 Y 교수는 대끔 눈치채고
『뜻밖인가? 그럴런지도 모르지. 실은 나두 뜻밖이었지. 그럴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자네한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보니 일단 전해준다는 생각으로 자네를 부른건데…』
담배의 불이 꺼전것 같지도 않은데 다시 성냥을 그어 불을 담배에 붙이고 깊게 한모급 빨아 연기를 내뿜은 뒤에 천천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