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徒使徒職(평신도사도직) 刷新(쇄신)의 道程(도정) ⑤ 個人(개인)과 團體(단체) 使徒職(사도직)
個人(개인) 使徒職(사도직) 根源(근원) 團體(단체) 서로 尊敬(존경)을
主敎(주교)와 一致(일치)해야 참된 使徒職(사도직)
①평신도 사도직의 기초는?
②무엇이 사도직을 효과적이게 하는가?
③사도직의 목적은?
④사도직은 언제 어디에서?
❺개인과 공동체로서의 사도직
⑥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양성
『평신도들은 개인적으로나 혹은 어떤 단체나 회에 가입하여 사도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15절)
■ 個人的 使徒職
『「참된 그리스도교적 생활에서 흘러나오는 개인적 사도직(요4·14)」은 조직적 활동을 포함한 모든 평신도 사도직의 근원이고 조건인 것이며, 이것을 대신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16절)』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떤 단체나 운동을 위해 아무리 부지런히 일한다 하드라도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다방에서나 술집에서나 우리의 전생활이 끊임없는 사도직이 되지 않으면, 소위 우리의 사도적 활동이라는 것은 헛된 움직임이 되고 말 것이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남편과 자녀들을 돌보는 어머니나 집안일만으로도 가톨릭활동회에 나갈 수 없는 어머니나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이들 모두가 하루 종일 그들의 가족과 동료와 이웃에 그리스도의 증거가 되도록 불리웠다.
■ 世界平信徒大會
세계평신도대회에서 유감스러웠던 점은 대부분의 대표단들이 이와 같은 사람들이 아닌 어떤 운동단체의 활동적인 회원만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누가 「조직체」에 가입되었거나 않았거나 한사람 한사람의 신자를 사도로서 인정하도록 배워야 한다. 공의회는 조직적인 그리스찬활동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개인적인 사도직이 그래도 횃불을 높이 처들게 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여기에서 북한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성스러운 공의회는 현대에 있어서도 박해 가운데 영웅적 용기를 갖춘 평신도를 일으켜주시는 하느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리며, 그 용감한 평신도들에게 父情과 감사의 뜻을 보내는 바이다.(17절)』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 사도직은 개인주의적 일수는 없다. 『…개인으로 밖에 사도직을 수행할 수 없는 평신도들은 엄격한 의미의 제도나 조직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작은 클럽형태로 모여 대화함으로써, 교회단체가 사랑의 참 증거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정과 경험을 서로 교환하며 고립된 생활과 활동의 곤란을 극복할 수 있고, 한층 더 만족스러운 사도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17절)』 가정 내에서나 그리스도교인 친구사이에서나 우리는 사도직으로 서로 서로를 돕고 격려해야 한다.
■ 團體 使徒職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하느님께서도 그리스도 신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한몸에 결합되기를 원하셨다.(18절)』는 똑 같은 원칙에 대해 공의회는 우리의 노력을 단체사도활동에 결합시키도록 우리를 격려해주었다.
『왜냐하면 사도직의 공동활동을 위하여 조직된 회들은 그 회원들을 받들어주고 사도직에 알맞도록 그들을 양성하며, 그들의 사도적 활동을 정리하고 통제하므로, 개인이 각기 활동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18절)』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에」가 성공한 경험이 수천 가톨릭신자생활 속에서 이것을 증명했다.
공의회는 또한 현대사회안에서 합의된 활동의 중요성과 환경(예를 들면 학생회, JOC, 교사회, 의사회, 간호원회 등)에 따른 특수교육과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영신적인 회, 가톨릭액션단체, 사회운동 등은 힘을 얻으며 특히 『주교가 때와 장소의 요청에 알맞는 것이라고 찬양하고 권장한 단체들은(21절)』 더욱 힘을 얻는다.
교령은 이러한 활동에 전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언급하고 찬양했다. 이러한 운동들은 단순히 『취미가 있으면』 가담하도록 그저 거기에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공의회도 『현대의 정세를 보아 일치된 조직적 사도직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18절)』고 말했다.
■ 團體間의 兄弟愛
「마땅히 지켜야할 질서」에 관한 제5장도 『사실 교회의 사도직단체에 형제애가 빛나고 공동목적이 달성되고 해로운 경쟁이 없어지려면 일치의 정신이 육성되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온갖 형태의 사도직단체가 서로 존경해야 한다.(23절)』고 강조했다. 이 해로운 경쟁은 목적(천주의 왕국)보다 수단(단체)을 더 중히 여길 때 생긴다. 우리 각자는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깨어서 기구해야 한다. 예를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공번되이 사용한(사도 2·44) 초기신자들과 같이 우리의 본당이나 운동에 속한 물건을 교회내의 다른 어떤 더 급박한 필요에 기꺼이 제공(빌려줄 뿐만아니라)하는가?
■ 聖職者·修道者와의 協助
마지막으로 공의회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평신자와 협조적이되고 그들의 주도 역할을 존중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협조가 그들로부터만 나오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평신도 대회에서는 『평신도를 위한 독립된 조직』을 갖자는 소리로 옥신각신했으나 다행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표들은 그것이 교회내의 순명과 일치를 부르짖는 신앙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인정했다.
교황께서 대표들에게 상기시켰듯이 교회 안에는 우리 주께서 세우신 단하나의 조직이 있을 뿐이며 우리의 사도직은 주교들과 일치되어 있을 때에만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운동에서 주교들의 파견을 받은 지도신부와도 일치해야 한다.
교령에는 『하느님의 교회를 다스리도록 성신께서 세워주신(사도 20·28) 주교들과의 일치는 그리스도교적 사도직의 본질적 요소』라고 되어있다.
개인으로서는 단체로서든 우리는 한몸의 지체로서의 사도이며 그러한 일치 속에서만 우리는 하나의 성신에 의해 감도 받고 이끌어 진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계속)
梁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