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서는 수도자들이 성덕이나 완덕을 독점한다고 볼 수 있다. 수도생활이 현재 당하고 있는 위기는 결국 정화와 새 출발로 이끌어져야 한다.
제2차 바티깐 公議會 후 수도생활의 관념이 오래지 않아서 아주 消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물론 수도생활 그 자체의 소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헌장에서는 「교회안에서는 누구나 성덕의 성소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 많은 신자들은 오늘날 완덕의 길이 꼭 수도생활만이라는 종래의 관점을 초월하여 자기네들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완덕의 길을 찾고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단체생활 속에서 완덕의 길이 있다고 믿는 것과 日常生活을 통해서 누구라도 완덕으로 불림을 받았다고 믿는 그 사이에는 수도생활에 대한 인식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수도생활이 어떻게 하여 우리가 알고있는 그런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가? 나자렛 예수님 시대에 유태교 내부에도 여러 형태의 수도생활이 있었다. 열심한 유태인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기 위하여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성전이나 사막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特히 요한 洗者도 사막에서 生活하였고 또 하느님 王國이 臨하심을 기다리고 이것을 알리기 위하여 苦行의 生活을 한 것이다. 그러나 重要視할 것은 나자렛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擇하지 않고 公的生活로 「가나」촌 잔치집에서 奇蹟을 행하시었다. 이 잔치집에서 예수님은 人間의 평범한 点을 나누었고 누구에게나 회개를 促求하고 自己自身을 떨쳐버려야 하고 聖德에로 부르시는 그일에 世俗으로부터 떠남을 要求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敎會初期에 많은 열심한 信者들은 봉헌한 獨身生活 · 淸貧生活을 하면서 불리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은 信者들이 靈的生活을 위해서 世俗으로부터 떠났던 것이다. 이러한 變遷을 가져온 動機도 歷史的인 理由가 있다. 로마帝國이 그리스도敎化됨으로 修道生活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그 當時 많은 사람들은 領洗를 받고 信者가 되었지만 그들의 信仰은 어디까지나 社會的인 것이었지 個人的이고 人格的인 信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領洗를 받고 그 責任을 깨닫지 못하고 受動的이었고 다만 聖堂을 채우는 消費者의 役割만 한 것이다.
이리하여 성직자들은 권위와 책임을 독점하게 되었고 신자들은 완덕에 나아가기 위하여 단체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특히 문예부흥기에 접어들면서 현시대의 발전과 더부러 고립된 분리를 가져왔다. 즉 수도자나 수녀들은 세속을 떠나 영적생활만으로 자신을 바쳤었다. 그와동시에 그들의 使命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육기관 자선기관에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일을 하게끔 한 것이다.
둘째 수도생활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많은 나라에서 수도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와 일부의 수도생활을 혁신할려는 노력도 있다. 수도자에 대한 율령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라고 강조하고 남녀수도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능동적이고 책임있는 「멤바」라고 하였다. 즉 수도회에 입회하는 남녀신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살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생활의 혁신방안은 앞으로의 수도생활은 수도자가 꼭 세속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인식은 없어질 것이고 제도화가 가벼워질 것이고 수도자들은 고용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의 「멤바」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봉헌한 독신생활은 일반사람에게 인간사회 발전을 위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사실을 인식시키게 될 것이다.
교회헌장 수도자의 율령을 살펴보면 하느님의 백성인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정신과 계명을 동시에 뚜렷하게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다. 특별한 불림을 받은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떠한 점을 특별히 골라서 다른사람보다 뚜렷하게 명시적으로 들어내려고 한 사람들인 것이다 예로부터 애덕의 보편성 즉 사랑에 국경이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된다는 그리스도의 정신에 본질적인 요구라 하겠다. 왜냐하면 보편성은 그리스도교회의 특수성이라 볼 수 있고 모든 신자들은 자기의 생활에서 실천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자들의 생활 현실은 이러한 애덕의 보편성을 뚜렷하게 음미하고 들어내는 것을 보통 허락치 않고 있다. 결혼해서도 보편적인 사랑을 베풀 수는 있지만 특별히 들어낼 생활조건은 아니다.
반면에 독신생활은 그리스도와 타인의 사랑을 위해서 뚜렷하게 명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생활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참된 신자가 될려면 하느님게 영광을 드리고 그러한 마음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살고있는 생활조건은 이러한 信仰의 中心을 그대로 들어낼 수는 없는 生活條件이다.
특히 現代世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神의 영광을 들어내기보다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느껴 감탄하는 세계가 一般사람들의 생활조건인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의 中心이 되는 要求性을 실천하고 또 그 要求性을 모든 사람들에게 좀더 뚜렷이 들어내기 위해서 앞으로 교회에서도 관상생활을 하는 수도자가 계속 필요한 것이다. <끝>
①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②하느님의 백성은 전교하는 백성이다.
③비그리스도교와 교회
④하느님의 백성에 봉사하는 주교 · 신부
⑤백성 속에서의 평신자의 임무
⑥하느님 백성 속에서의 수도자의 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