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市 AP 로이타 同和】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는 성금요일 예절후 교황 바오로 6세는 비에 젖으며 높은 십자가를 들고 성로 14처를 조배하며 「로마」市 중심에 있는 폐허 「콜로세움」으로 행진했다.
성 토요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의 망부활 대미사에서 교황은 슬픔의 자색 제의 대신 기쁨의 백색 제의를 입고 새불을 축성했으며 그리스도 부활의 상징인 부활초에 점화했다. 이어 영세유(油)를 축성하고 성지(聖枝)를 태웠다. 성지를 태운 재는 내년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예절에서 신자들의 이마에 바르게 된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각지에서 모여든 수천명의 순례자들이 이 미사에 참예했으며 「로마」의 5백개 성당의 종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며 일제히 울렸다. 부활주일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노천미사를 드리고 「로마」와 전세계에 강복했다.
【예루살렘】 이스라엘 통치하에 들어와서 두번째의 성주간을 맞이한 성지 「예루살렘」은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평온한 부활절을 맞이했으나 아람 · 이스라엘의 적의(敵意)는 예년의 순례자들을 감소시켰다. 상쾌가고 맑은 날씨에 「요르단」강 너머로 대포 소리가 울리곤 했다.
「예루살렘」의 수좌 대리벨드리티 대주교는 약3백명의 순례자들이 참예한 가운데 성묘(聖墓)대성당에서 부활주일 새벽대미사를 올렸는데 영성체한 2백여명 중에는 이태리인이 많았다.
1966년 부활주일에는 1만6천명의 순례자가 붐진 「에루살렘」은 67년 이스라엘 아랍 전쟁 이후 말썽많은 도시로 변하고 순례자들은 몇백명을 넘지 못한다. 전쟁 이전에는 아랍인들 참배가자 많았으나 지금은 대개 영국 · 아랍 · 독일 · 스위스 · 스웨덴인들이다.
이곳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성 죠지」 예배당과 그들이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으로 믿는 「파라트루퍼」路의 정원 무덤에서 부활 예배를 올렸다.
【베르린 · 독일】 「베르린」은 부활주일에 이어 3일동안 東 · 西 「베르린」의 장벽이 열리고 2백20만 西 「베르린」人에게 東 「베르린」의 친척들을 방문할 길이 틔었다. 서독 관광 당국자에 의하면 부활주일 오전중에 5천여명이 장벽의 세곳 통로로 공산지역에 들어갔으며 4일간의 부활휴일중 약7만명의 방문객이 동 · 서 경계지인 「쿠르페르스텐담」에 몰려들었다 한다.
서독인들은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거의 동독방문이 허락됐으나, 동독인들은 돈을 내지 않으면 서독방문이 허용되지 않았다.
【월남】 부활절 휴전이 없기 때문에 부활주일 아침미사에 군인들의 수가 드물었다. 「정글」의 미군 전초기지에서는 전투복 차림의 군목들이 군인들을 위한 부활미사 또는 예배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