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敎會(교회)에 回春(회춘)을 가져다준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平修士(평수사)에 感化(감화)받은 一生(일생)
언제 世上(세상) 떠나도 두려움 없다
衰弱(쇠약)해진 教皇(교황)보고 눈물 터뜨린 樞機卿(추기경)
어릴 때 스승 祖父(조부)께 感謝(감사)
▲5월 23일 목요일 승천축일 아침 6시30분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다. 9시부터 11시까지 여러 사람들을 접견하시고 11시에는 국무장관 추기경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오늘 축일의 성장을 한 추기경 복장과 창백한 교황의 얼굴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12시에 서재의 창을 열고 광장의 신자들과 함께 아직도 힘찬 목소리로 삼종을 바쳤다. 신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성 때문에 말씀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시30분에 구스타브떼스다 추기경이 오셔서 교향을 뵈옵고 그만 눈물을 터뜨렸다. 교황께서는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시고 『친애하는 구스타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어떻거겠나! 우리는 함께 오랫동안 살았지, 그리고 교회에 봉사했지, 여하튼 우리가 지나간 흔적이 남겠지, 다행히 주님의 도우심으로 대과없이 잘살아왔지. 그러니 하루라도 더 지체할 필요는 없지, 주께서 원하신다면 아직 좀 더 머물러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곧 출발합시다』 밤늦게 또다시 심한 진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오늘 승천축일에 예정에 있었던 「몬떼까시노」 수도원 성당축성을 이야기 하셨다. 침소에 드시기전에 평소 때처럼 측근자들에게 강복을 주시면서 『간밤에 내가 페데리꼬 수사에게 미사를 드릴 수 없어서 참 안됐다고 했더니 그는 즉시 성하! 이 침상이 바로 성하의 제대가 아닙니까 했읍니다.
오 사랑하는 페데리꼬수사! 내가 신품성사를 받았을 때 고난회의 한평 수사가 그의 엄숙한 침묵의 표양으로 나의 좋은 결실을 도와 주더니 이제 나의 긴 생애의 종막에 또 평수사 한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기다리던 말을 전해주다니 그렇지 정말 이 침상이 내 제대지 제대는 희생물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 나 자신이 제물로 준비되었읍니다. 오늘 승천 축일밤에 떠나도 조금도 겁나지 않습니다』라 하셨다. ▲5월 24일 금요일밤새 조금밖에 주무시지 못하고 아침 미사에 참례하시고 영성체를 하신 후에 기진하셨다. 수혈과 주사로서 영양을 섭취케 했다. 그리고 88회 탄일을 맞이하는 토리노 풋사띠 추기경에게 축전을 보냈다. 그 후에 치꼬냐니 추기경과 델아꽈 주교님을 곁으로 부르시어 『이렇게 우리들끼리 한자리에 모이게 되니 마음 든든합니다. 그래서 나의 신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욱 시야를 넓혀 신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인격의 존엄성을 수호해야할 때입니다. 공의회 벽두에 말한 것처럼 지난 50년간의 시대적 요청과 교리의 연구로 이런 현실이 더욱 명백해졌읍니다. 복음이 바뀐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제서야 더 잘 알아듣게 된 것 같습니다. 오랜 사회경험을 가졌다면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읍니다. 누구라도 예컨데 나처럼 동양에서 20년간 불란서에서 8년간 그 사회상을 보았다면 서로 다른 전통과 문화를 알아들을 수 있으며 바로 이때를 이해하고 시야를 멀리 그리고 넓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라고 진지하게 이야기 하셨다. 하루를 마지막 보내시며 침상에 누워 주위에 걸려있는 십자고상, 성상성화를 두루 살피며 다정한 친구의 감회를 토로하고 자기에게 교훈을 준 주교신부들과 특히 자기를 위한 첫 교육자인 사베리오 조부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계속)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