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敎會(교회)에 回春(회춘)을 가져다준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가난하게 났고 살았고 또 가난하게 죽고 싶다』
「준주성범」臨終(임종)의 벗삼아
▲5월 25일 토요일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했다. 저녁에는 위독 상태에 빠졌으나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고 허약한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떠날 준비가 다되었다고 반복했다. 자기 비서더러 「준주성범」 3부48장을 읽게 했다.
듣고 난 후에 『주께서 내가 병들어 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물위에 배는 움직이고 있읍니다. 바로 이것이 보이지 않는 사공이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 늙고 병든 한노인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시대의 희망적 증거가 아니겠읍니까? 20세기 초엽 레오 13세께서 임종하신다는 소식은 「로마」 일반공적기관에서는 무시당하고 말았읍니다.
그리고 당시 신학생이던 내가 「바티깐」엘 갔을때 길에서 병든 교황께 불경스러운 언사를 예사로 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읍니까?』 그리고 「준주성범」 48절을 마지막까지 읽게 하시면서 고요히 묵상에 잠기었다.
1930년판에 라띤어와 불어로된 「준주성범」 마지막장에는 친필로 「1958년 성덕이 출중하신 교황 ㅃ오 12세로부터 자기의 비천한 후계자 요한 23세에게로 넘어오다」라고 써놓았다.
▲5월 26일 일요일 새로운 내출혈에도 불구코 일어나려고 하셨으나 시의들의 만류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시의들의 합동성명이 발표되고 처음으로 교황서재의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녹음 「테프」만으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은 삼종을 바쳤다. 이렇게 되자 전세계로부터 격려의 전문과 『메시지」가 쇄도했다. 교황께서는 일일이다. 답변해주도록 지시하시고 감사롭게 생각하셨다. 「빠리」의 「라꿔라」지는 『요한 23세는 모든 사람이 다 사랑할 수 있는 분이 되었으며 복음의 「멧시지」를 세상에 새로운 빛으로 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만백성에게 일치와 희망의 증표로 뚜렷히 나타났다』고 당시의 상황을 서술했다. 교황의 건강한 체력은 용케도 지탱하고 있었다.
▲5월 27일 월요일 밤새껏 못 주무셨으나 새벽에는 오랫동안 기구하시고 평온하게 준주성범과 「베르가모」의 토마성인의 「사람의 불꽃」이라는 책을 읽게 하셨다. 아침나절에는 잠잠했으나 오후에는 다시 심한 고통이 밀어닥쳤다. 저녁때 「베르가모」에서 조카신부가 도착했다. 교황께서는 다정하게 맞이하시면서 『와주어서 기쁘다. 그러나 한편 서운하기도하다. 내혈연의 한사람일뿐 아니라 사제인 네가와 주어서 기쁘고 한편 모처럼 왔는데 이처럼 아파 누웠으니 서운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족들에 대해서 오래도록 이야기하시고 자기친척들이 자기가 죽기전의 심정을 알아주고 또한 자기의 신뢰심을 전해주도록 당부하면서 『나는 가난하게 났고 항상 가난하게 살았다. 그리고 가난하게 죽고 싶다』고 유언 비슷이 말씀했다. 저녁에 국무장관께서 『성하 온 세상이 다 기도드리고 있습니다』하자 잠잠히 듣고 계시다가 한참만에 『병든 교황을 위해 기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나로서도 이 공동기도에 내 지향을 것들이고 싶습니다. 주께서 내생명의 희생을 원하신다면 이 제헌이 공의회와 온 교회와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에게 더 많은 은우를 나리게 하시고 나의 교황직을 내 자신의 성화와 온 세상에서 나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왕국을 넓히는데 노력하면서 어려움을 당하는 모든 사람의 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주의 뜻대로 되어 지이다. 하고 같이 기구합니다』하셨다. 다시 출혈이 심해 창백해졌으나 수혈을 한 후 좀 나아지셨다. (계속)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