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㉖ <모세時代(시대)> ⑤ 빠스카의 밤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빠스카」이제 解放(해방) 祝祭(축제)로
발행일1969-08-31 [제683호, 2면]
성경 이외에 빠스카의 밤에 일어난 일을 전하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에집트 탈출에 관한 성경의 보고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핵심적인 救世事件을 장황하게 설명한 註解的 說話이다. 오늘의 우리도 그렇지만 특히 고대인들은 어떤 源泉的인 사실과 그 해석을 별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앙은 어떤 사건에 관해 그 역사적 事實性의 표면에 패념하지 않고 그 深層의 종교적 성격에 집착하였다. 빠스카의 밤에(출애 12·11·13 참조) 일어난 사건에 관한 성경보고는 본격적으로 어떤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紀念日」에 대하여 즉 이날의 유래와 성격 그리고 이날을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놓고 이르니라- 너희는 양을 끌어다가 너희의 집소 솔에 맞추어 빠스카로 희생하여라. 너희는 이솝풀 한묶음을 가져다가 접시 안엣 피를 찍어서 그 피를 문인중방과 두 문설주에 좀 바르고 아침까지 제집 문밖으로는 아무도 나오지 말지니라.
야훼께서 에집트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며 돌아다니시다가, 문인중방과 두 문설주에 그 피를 보시고는 야훼께서 이 문간을 지나가시고 말아, 망쳐주는 이로 하여금 재앙을 끼치려고 너희 집으로 못 들어가게 하시리라. 너와 너의 자손들은 이 행사를 영원토록 법으로 삼아 지킬지니라』(출애12·21~24)
이 보고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전부터 해마다 빠스카 축제를 지내왔던 것 같다. 그리고 前回에 말한 대로 이 「야훼의 경축」은 광야에서 성대하게 지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周期的인 축제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집트에서 나온 역사적 사건의 기억과 결부된 것이다. 셈족의 유목민은 먼 옛날부터 이른 봄철에 수양이나 염소 같은 작은 가축을 희생으로 바쳤고(아벨의 제사 참조), 이 희생은 특히 맏자식을 속량하기 위해 가축떼의 맏베를 바치는 풍습을 지켜 왔었다.(아브라함의 이사악 제헌이야기 참조) 그리고 이때 집(천막)의 출입문에 바른 그 제물의 피는 영검스러운 보호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빠스카의 밤에 에집트의 맏아들들이 죽었다는 성경보고에는 셈족의 오랜 관습법인 同態復讐法(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목숨은 목숨으로, 상처는 상처로 갚는 법)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너는 파라오에게- 야훼께서 나의 아들, 나의 맏아들은 이스라엘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 그러나 네가 저를 놓아 보내기를 거절한다면, 보라! 내가 너의 자식, 너의 맏아들을 죽이겠노라>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전하라』(출애 4·22~23)
성경저자는 하느님의 이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죽음의 천사가 지나갔다는 보고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극히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자연적 방법보다 오히려 사건들의 초자연적 원인과 그 깊은 의미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는 시편 77의 49~51에 시사되어 있듯이, 에집트에 내린 이 마지막 재앙을 외관상으로는 혹사병과 같은 자연적인 재앙으로 推論할 수도 있다.
어쨌든 빠스카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관련지어 짐으로써 새로운 의의를 갖게 되었다. 이제 빠스카는 단순히 해마다 봄철에 하느님께 드리는 傳來의 인습적 제사가 아니며, 따라서 제물로 잡은 어린양의 피도 단순히 이스라엘 가정들의 액운을 막아주는 역할만하는 것이 아니다. 빠스카 축제는 바로 해방대업의 기념축제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야훼께서 결정적인 강타로 에집트의 반항을 꺾으신 그 밤에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기 때문이다.(분도출판사 발행 「구약과 신약의 빠스카」 33페이지이하 참조)
성경저자는, 하느님이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에집트에서 구해내신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행하고 계시며 또 미래에도 그렇게 행하시리라는 희망을 선민들 가운데 불러일으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