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⑧ 大洪水(대홍수) 이야기
聖經太古史(성경태고사)
두 엇갈린 史料(사료) 바탕
무서운 斷罪(단죄) 義(의)로운 은총
발행일1969-04-20 [제665호, 2면]
창세기 6~8장의 대홍수 이야기는 같은 내용이 반복되었는가 하면 앞뒤 문맥이 맞지않고 관심사와 文體가 교차하고 있는 등 복잡한 「텍스트」이다. 이것은 두가지 史料를 뒤섞어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빨레스띠나」적인 색채가 짙은 다양하고 생동적인 묘사를 하고있는 야휘스트(J)사료요, 또 하나는 數理的 표현에 신경을 쓰고 어쩌면 무미건조하기조차 한 圖示的인 묘사를 하고있는 祭官系(P)사료이다. 하느님은 반드시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며, 한편 그 무서운 단죄중에도 義로운 「殘餘者」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는 구세사적 진리를 밝히기 위해, 성경 편찬자는 비록 두가지 史料에 서로 부합하지 않는 대목들이 많더라도 그것을 혼합하여 하나의 줄거리를 엮어냈다.
이것은 고대 近東지방에서의 通例的인 역사편찬방법이기도 했다. 따라서 궤배의 크기, 짐승들의 수, 홍수기간 등 數理的 묘사로 기하학적 내지 역사학적 정확성을 期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벌하실때나 은총을 베푸실 때나 모든 일을 정확하게 슬기옵게 처리하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상징적 표현요소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古代 바빌로니아에도 성경의 說話와 거의 같은 형식의 홍수이야기가 있었다.
기원전 18세기경 유포된 것으로 전해지는 「길가메쉬」 서사시가 그것이다.
이 서사시는 주인공 「우타 나피쉬팀」이 손자 「길가메쉬」에게 자기가 에아神의 권고에 따라 큰 배를 만들고 그 안에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간 다음, 온땅을 덮은 대홍수를 어떻게 치렀는지를 이야기해준 내용으로 역어져 있다.
성경의 홍수이야기가 이 「길가메쉬」 서사시에 직접 의존하였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증명된 바 없다.
두 설화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전재로 하고 있는데 성서학자 융커는 「셈」 족의 아주 오랜 공통전승에서 派生하여 서로 다른 색채를 띠게 되었을 것이라고 推察하고 있다.
두 설화의 큰 차이는 무엇보다 그 종교적 입장이다. 즉 성경의 홍수이야기에는 유일신교적 신앙이 고백되어 있고 그 도덕 수준도 높은데 바빌로니아의 說話는 다신교적이어서 諸神들의 기만적이고 변덕스럽고 황당한 擧措가 그려져 있다. 성경에서 정(淨)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고 있는 점에도 反異敎的 의도가 깃들여있다. 예컨대 이교도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돼지를 아주 부정한 짐승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성경에도 신화적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그때 세상에 사람의 악행이 많아지며 모두 그 마음 쓰는 꼴이 줄곧 악하기만 함을 야훼께서 보시고, 땅위에 사람을 만드셨음을 뉘우쳐 당신 마음에 걱정하시니리』(창 6·5)하나 이 귀절은 성경 저자가 하느님에 관하여 어린애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_心」이란 표현은 실은 神 앞에서의 인간의 고상한 지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는 인간을 지나칠이만큼 들어높이어 당신과 친근한 지위에 둠으로써 당신이 사람과 「함께」 있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과 「가까이」 지내게 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타락하여 스스로 자기를 높이려는 자만심에서 하느님을 등질 때는 파멸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그 심판을 가능한 限 인상깊게 묘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神은 심판중에도 자비를 베푼다. 義롭고 하느님의 뜻(사랑과 정의)을 실현하려는 사람(노에)은 하느님의 은총(궤배)을 힘입어 靈的 殘餘者로서 새로운 인류의 「모종」이 되는 것이다.
홍수후 하느님은 노에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담과의 默契를 되풀이한 것이다.
『자식 낳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라』(창 1·28과 9·7참조) 그리고 무지개를 계약의 표로 삼았다고 했다. 옛 헤브레아 사람들은 무지개를 天弓 즉 하느님의 활로 생각하고 당신이 진노하셨을 때에는 그 활시위를 잡아당기어 地上을 겨누신다고 했다. (시 7·13 참조), 그것을 구름에 걸쳐놓았다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 즉 초자연적 평화를 뜻한다.
(자연적으로도 가령 폭풍우가 지나간 뒤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우리는 안정과 평화를 되찾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지개(자연 질서)를 볼 때마다 하느님의 초자연적 구원, 질서를 상기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실상 자연은 神의 섭리를 정직하게 반영시키고 있는데 인간이 그것을 악용 또는 남용하여 재앙을 自招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