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7) 갈림길 ①
발행일1969-04-20 [제665호, 4면]
찻물을 마시고 울렁울렁 양치질을 하고나서 Y 교수는 웃으면서
『어때요?』
현주를 보고 물었다.
현주로서는 당장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머리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번거롭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으나….
『그렇겠지. 당장 해답을 구하는 내가 성급하지… 어떻든 난 박군의 뜻대로 뜻을 전하는 거니까, 생각해보라구…』
Y 교수는 담배를 붙이고 나서 말했다. 그 표정으로 보아 Y 교수가 뭐 그렇게 강경하게 현주의 「예스」를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게 현주로서는 다소 마음이 놓여지면서 문득
『선생님의 의견 듣구 싶은데요…』
말끝을 흐려버렸다.
『내 의견?』
『예』
한참 있다가 Y 교수는
『허허… 그건 나두 즉석에서 대답하기 곤란하지…그것보다두 현주군의 일이니까… 또 그것 보다두 둘이 그동안 그만큼 오래 사괬으니까, 역시 결론은 자네가 내려야겠지…』
슬쩍 발뼘을 하고 있었다. 현주는 잡자기 외로워짐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잠잫고 있으려니
『처음에도 얘기한대로 숙명론자는 아니지마는 인연소관이겠지…』
그러면서 팔목시계를 보고 일어섰다
밖에 나와서 Y 교수는
『참 그건 아직 아무 연락이 없어. 아마 어려운 모양이지? 뭐 고생스럽고… 그만 결혼하는 것두 좋지 뭐야』
남의 일처럼 이야기햇다.
현주는 더욱 기대에 어긋남을 깨달으면서 그저 쓰게 웃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Y 교수와 갈라진뒤 혼자 길가에 나서니 머리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복잡한 것만이 아니었다. 알지못할 분노가 치밀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유학문제가 막연해졌대서만도 아니었다. 그 두가지가 모두 원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오니 우중충한 방안이 무슨 감방같게만 여려졌다.
옷을 갈아입고 래디오 스윗치를 비틀었다. 장충체육관에서 무슨 바스겟께임을 하는 모양이었다. 중계방송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무척 열띄고 있었다.
경기가 무척 열광된 분위기로 진행중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현주의 머리를 자극했다. 스윗치를 꺼버렸다. 그러나 이내 스윗치를 비틀고 다이얄을 돌렸다. 이번엔 치퀘스트 음악인듯 전화로 주고받는 말이 또 신경을 건드렸다. 껐다. 그리고 방석을 베고 뒹굴고 있는데
『현주, 있었구나.』
들이닥친 사람은 혜경이었다.
『얘, 어떻게?』
이처럼 반가울데라고 없었다.
현주는 현주답지 않게 혜경이를 덥썩안고
『얘 참 잘 왔구나. 나 우울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그럼됏꾸나. 무슨 우울증이지?』
혜경이도 현주의 호들갑에 맞춰주면서 혜경이답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Y 선생 만나자구 해 만났지 뭐냐?』
현주는 솔깃이 이야기할 심정이 되고 있었다.
『그래에?』
『점심먹으면서 얘기했지』
『무슨 얘긴데?』
『그게 보통 얘기가 아니야.』
『어떻게 특별이란 말이야?』
현주는 입을 다물었다가 내친걸음에 발음해 버리고 말았다.
『결혼 하라는 거야, 중매 서는 거야』
『뭐? 중매? 언제부터 Y 선생이 중매장이가 됐기에?』
『누가 아니라니?』
『그런데 상대는?』
『그게 귀구멍이 막힌다는 얘기야.』
『그래 우울증이구나. 어서 말해봐』
『놀리지마. 박선생이야.』
『박훈씨?』
혜경이 놀랄줄 알았더니 움찔도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럴줄 알았어.』
『알았다니?』
『빤히지 뭐니? 중년 신사가 공연히 젊은 아가씨에게 펜팔했겠니? 처음부터 그런 배포를 차려놓고 그런줄 난 알았어.』
혜경이는 입을 삐죽거려 보였다.
『그거야, 약간 의심은 갔으나…』
하고 나서 현주는
『그래두 나쁜 사람은 아니야.』
박훈씨가 혜경이로부터 불신(不信)의 대상으로 지목되는게 까닭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나쁜 사람이랬어?』
『그런데 왜 입을 삐죽이는거야?』
그말이 해명은 하지 않고
『너 마음에 있는 모양이구나?』
혜경이는 현주를 쏘아 보았다.
『그건 즉석에서 대답못해. 그러나 이것만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애… 나쁜 분, 엉뚱한 분은 아니라는거. 그리고 야비하거나 저속하지는 않다는거…』
『옳지 Y 선생을 중매장이로 세웠다구?』
『중학 동창이래. 내력을 잘 알고 있어. 지금 독신이고 아이가 하나 있다나?』
『아이까지?』
혜경이는 눈을 크게 뜨더니
『얘 애당초 그만둬라. 그게 말이되니?』
그리고는 입을 삐죽했다.
마치 현주를 경멸하는 것 같은 태도라고 느껴졌다. 그 혜경이의 태도가 현주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애기 하나쯤 있음 어쨌다는 거야? 연령 좀 많음 어쨌다는 거야? 지긋하고…』
현주는 Y 교수가 하던 말이 귀에서 쟁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