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자유화물결이 일고 있는 「체코」의 한 화가가 그림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인 「체코」 복음전도회파의 평신자활동회원이며 그림을 통한 기독교 복음전달의 기수인 미로슬랍 라다이다.
그는 「프라하」에 살고 있으며 현재 미국서 전람회를 열고 있는데 그의 그림은 고통과 공포와 희망와 억압의 세계를 잘 말해준다.
그는 엄밀히 따져 「종교화」와 「일반화(세속화)」의 구별을 하지 않으며 그의 인생에 대한 모든 태도는 바로 신앙인의 그것으로 종교적 세속적 생활이 완전히 일치해 있다. 그 결과 그의 그림은 단순한 성소장면의 재구현이 아니다. 라다의 그림에는 「고딕」식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는 어두운 색과 날카로운 선이 인간의 고통과 불안의 세계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의 화폭에는 현대적 기교와 찬란한 희망도 담겨있다.
그는 송진에다 물감이나 모래를 섞어 놀라운 추상화를 그린다.
1926년에 태어나 금년에 43세인 라다는 오늘날 「체코」화가중 손꼽히는 존재로 경력 또한 매우 다채롭다.
어릴땐 「주변에 있는 연필과 종이가 몸살이 날 지경」으로 그려대어 부모들은 배고픈 예술가가 될까봐 걱정이었다고 한다.
챨스대학교에서 유명한 시릴 보우다와 함께 공부한 후에 만화가로서 신문삽화가로서 상업미술가로서 일하다가 군대에 들어갔다.
2년후 생물학자인 아내의 뒷받침으로 자유화가 생활을 하다가 1954년의 전람회가 인정을 받아 1956년엔 정부화가의 말단을 차지했고, 1963년엔 정치적으로 중요한 「그룹」의 정회원이 됐다.
1957년 더욱 독창적인 예술가적 탐구를 위해 친구 몇사람과 「변형」이라는 「그룹」을 만들기도 했으며 복음(성경)의 희곡식 낭독을 시도하여 「프라하」에 있는 말틴교회에서 정규적으로 시행해왔다.
여기에는 국립극장의 많은 배우들이 참가하여 종교교육을 받지않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소련의 정치적 압력과 군대에 맞서 알렉산더 두브첵크가 이끈 1968년 민주화의 영향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그는 두눈을 빛내면서
『최근의 사태는 크리스챤과 맑스주의자, 교회와 국가간의 대화의 길을 열었다. 즉 예술가들은 문화교류와 음악과 연극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 그 자체도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날 「프라하」의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작품과 그의 주위화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2·3개월 전만해도 그들의 작품은 완전히 무시당하여 평론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51점의 작품전시는 성공했는데 관람자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서야 비로소 최근에 일어난 사태의 윤곽을 깨닫게 되었다. 【뉴욕 R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