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南(월남) 佛敎界(불교계) 反(반)가톨릭 態度(태도) 노골化(화)
가톨릭인 티우 大統領(대통령)을 故(고) 디엠 大統領(대통령)과 同一視(동일시)
佛敎指導者(불교지도자) 트리 쾅 僧(승)의 오른손 티엔 민 僧(승)의 有罪宣告(유죄선고) 계기로
脫走兵幇助罪(탈주병방조죄) · 不稳(불온) 「삐라」 所持罪(소지죄)
【사이곤 · 월남 NC】 「사이곤」에서는 「안쾅」寺院의 高僧 티엔 민(48)이 군사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자 가톨릭이 불교도를 박해한다는 불만이 노골적으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티엔 민은 「안쾅」사원의 세속문제 연구원 청년문제 위원이다. 그는 탈주병들을 숨기고 도와주었으며 「삐라」를 초안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17일 두번째 재판에서 5년의 독방감금형을 선고받았다. 15일에 있은 첫번째 재판에서는 음모자들을 숨기고 무기와 공산당의 서류를 불법소지했다는 죄로 10년의 중노동형이 선고됐었다.
「사이곤」의 불교지도자 트리쾅은 16일 「안쾅」 寺院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이 선고에 대해 미국을 비난. 『정부의 불교도 탄압을 비롯하여 월남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비난했다.
티엔 민은 1963년 고딘 디엠 정권 타도에 공헌했고 트리쾅의 오른손으로 알려졌었다. 기자들이 트리쾅을 만난 것은 그가 18개월만에 대중앞에 나타나 7명의 高僧과 자리를 같이하고 불교통일회의 성명을 듣고있을때였다.
동 성명은 티엔 민에게 10년 중노동형을 선고했던 정부의 처사가 어이없고 잔혹하다고 하고 공소사실이 없이 선고된 이 사건이 불교계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고 했다. 또한 가톨릭신자인 티우 대통령이 역시 가톨릭인 故 디엠 대통령과 꼭같이 불교도를 탄압한다고 되풀이하고 『티우는 열심한 가톨릭신자로서 악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불교도를 탄압한 디엠의 계획을 수행하려고 외국(미국을 가리킴)에 의지하는 자』라고 비난하면서 불교도들에게는 정부의 탄압을 명심하라고 촉구했다.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티우 대통령은 불교도들이 공산당편에 붙어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
『정부 정책이 종교에 좌우된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트리 쾅은 『대통령에게 물어보라. 우리는 디엠정권하에서와 같은 처우를 받고있다.』고 대답했다.
1963년 뎌름 디엠정권의 군대가 사원들을 습격하기 시작하자 이곳 미국대사관은 티리 쾅에게 피신처를 제공햇는데도 그는 『미국이 티우의 불교탄압을 돕는 것은 월남정치활동의 기본요소인 反美主義를 억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정부처사에 반대하는 시가 「데모」는 없을 것이나 불교승들은 감옥에 가고 필요하면 죽을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트리 쾅의 말은 6년전 디엠정부와의 투쟁에서 승려들이 감행한 분신자살을 생각나게 한다. 미국이 즉시 철거하기를 바라느냐의 질문에는 『정부의 처사는 공산당을 돕는 행동』이라고 할뿐 언급을 피했다.
한편 법정에서는 티엔민의 변호인 리엥이 이들의 성명에 호응하여 『가톨릭신자인 티우 대통령이 불교도를 투옥함으로써 양교 사이를 떼어놓고 잇다고 비난했다.
호전적인 그들은 정치적 야망을 종교박해라는 허울 밑에 감추고 6년전 「쿠데타」에 성공했으나 권력은 군부가 장악하게 됐었고 「휴」와 「다낭」의 불교도들은 이어 군정의 종식을 내걸고 다시 위기를 조성했었다. 불교도인 당시의 군정수상 키(현부통령)는 강력한 조처로써 질서를 회복하고 1966년 9월에는 그들의 제안인 총선에 동의, 1967년 티우정권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계속 정부를 반대하고 있다. 덧붙여 베트콩의 정치무기인 「해방방송」은 티엔민의 투옥을 반대하라고 매일같이 선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