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直(정직)으로 特徵(특징)지워야 事業(사업)에도 倫理(윤리)있다 ㊦
事業(사업), 個人利益(개인이익) 보다 全體利益(전체이익) 追求(추구)해야
不當(불당)한 方法(방법)의 出世慾(출세욕)
“道德的(도덕적) 人間(인간)은 損害(손해)본다”지만
不正直(불정직)한 社長(사장)은 苦悶(고민) 더 많아
自身(자신)의 人性(인성)을 喪失(상실)
경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한계는 무엇인가? 진실로 인간적인 경제-시민의 복지에 진실로 봉사하는-는 완전한 자유 자본주의나 정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이것의 극단적인 형태이다)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두개의 극단(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균형을 갖자면 양쪽에 박력있고 끊임없는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
경제가 가난한자들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품위와 상품의 척도를 보장하지 않으면 부자는 안전할 수도 없고 윤리적일 수도 없다. 이것이 지난 70년 동안의 지배적인 思考추세다. 이것은 또한 次位의 문제점을 생각한다. 즉 복지에 대한 사업의 책임이 그것이다. 사업에 대한 옛날의 속담을 보면 이익만이 문제이며 사업중의 사업은 사업이라고 했지만 이것이 도덕적으로 모순이라는 것이 오늘날은 명백하다.
예를들면 공장에서 내뿜는 오물로 공기와 물이 더러워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똑똑히 알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며 공장에서 매일 수백만톤의 유독「까스」를 공기와 물속에 쏟아 놓음에 따라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오늘의 大都市에서 하루아침에 10만명의 주민이 질식사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어떤 조처를 취할 것 같지 않다. 정부에서도 정부가 받아 들일만한 정도의 조처만 취하고 당장은 산업에 유익한 길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으로 부터의 절박한 요구가 없다할지라도 도덕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왜냐하면 대중이란 돈과 권력 앞엔 무력하니까.
그러므로 부정적인 면으로 볼 때 도시에 공장이 서지 않으면 가난과 실직으로 도시가 무너져 사업도 위태로워 질것이고 긍정적인 면으로 볼 때 도시에 공장이 서게 되면 새시장이 개척된다. 그러므로 이익과 도덕은 반드시 서로 배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성질상 약간 개인적인 사업윤리와 관계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승진에 급급한 어떤 과장이 자기 과에서 한일에 대한 신임과 업적을 모두 자기 것으로 뺏아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사람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부하직원을 동료 앞에서 칭찬하지도 못할 것이며(다른 사람 앞에서 각자를 합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상사 앞에서(그들의 능력과 합당한 평가를 부인하여 승진을 막고) 부하직원을 칭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패시킬 뿐만아니라 二重의 不義를 犯하게 된다. 즉 다른 사람의 명예, 재능, 합당한 평가와 보상을 부인하는 不義와 자격도 없이 허위와 기만으로 승진함으로써 고용주에게 끼치게 되는 不義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인간은 기왕의 기만을 덮기 위해 계속기만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타인과 자신에게 사기꾼이 되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그의 전 인간존재가 기만 덩어리가 되어버리고 자기 것 아닌 인생을 살게 된다.
이것이 사업의 안팎에서 그러한 인간의 전 생활의 質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正直은 最上의 方策. 거짓말 장이는 가장 불행한 人間.』이라는 낡은 문구가 절대적인 진리란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간부급에 대한 윤리문제에도 봉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社長이 앞으로의 투자에 대해 정부로부터 부당하게 정보를 입수하여 그 정보를 이용하여 경쟁자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파렴치한 자들은 『납작 해지기전에 먼저 상대방을 납작하게 만들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장이 법이나 인간의 눈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도덕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이유는 명백하다. 타인과 자기와의 관계가 정직하고 정당해야 하며 정부관리로부터 나온 부당한 정보로 이익을 보는 것은 자신의 이득에만 눈이 어두운 利己이기 때문이다.
흔히 진실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인간은 사업에서 손해를 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상대방은 그러한 도덕적인 양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천만에. 정직한 사람은 자기 단골에게 정직하다고 알려질 것이고 신용을 얻게 된다. 정직과 신용이 의심스러우면 사업에서는 치명적이다. 더우기 그러한 인간은 고립되어 살게되며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부정직한 사장이 정직한 사장보다 정신적인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중역진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윤리적 문제는 자신을 회사를 위해 어느 정도 바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 『천국을 위해 고자된 자』에 적용시키면 바로 『사업의 왕국을 위해 고자된』 간부들이 있다. 즉 모든 정력, 재능, 시간, 思考를 오로지 회사에만 바친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자식을 위해서』라고 정당화시키지만 실상 그러한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이나 가족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교양있고 발전된 존재가 되기 위해 오락, 독서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려면 가족과의 시간도 필요하다, 사업적인 야심으로 이런 것을 소홀히 한다면 언제 자신과 가정을 파괴하게 될지 모른다.
때로는 밤을 새워서 해야 할 일을 맡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가 되어야지 원칙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원칙이 되어버릴 때 그 인간은 도덕적인 비난을 면치 못한다. 경제적인 질서에 대해서는 더 복잡한 윤리문제가 있다.
이럴 때엔 정부의 역할이 크며 고용주나 피고용인은 이익이나 이윤을 초월한 더 고차적인 것을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안될 경우 정부는 통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절대적인 해결책이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관계되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뿐이다. (끝)
피터·J·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