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동안에 데이야르 드 샤르뎅에 관해서 1천5백권 이상의 책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1955년 4월 10일 부활주일에 이 불란서 예수회 신부가 죽었을 당시만 해도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73세였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先史學의 개척과 탐구에 바쳤다.
전세계 권위있는 전문紙들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등지에서 그가 실제로 답사를 한데 대해 논평을 가했었으며 그의 기사를 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후 「로마」에서는 그의 책을 출판하지 못하도록 命했다. 그러나 교회장상으로부터의 판금조처는 그의 생존시밖에는 효과를 발하지 못했다.
그가 죽기전 그는 그의 원고를 아주 친한 친구에게 맡기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아놀드 토인비, 줄리안 헉슬리 등 저명한 과학자, 작가와 잔느 모르띠에야에 의탁했고 그들에 의해 그의 책들이 세상에 나왔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책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독자중에는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많다. (그의 책은 모두 2백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열경과 판매부수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전에 그는 『나는 즉각적인 반응을 별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단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은 힘을 끌어 들인다』라고 했었으니까 그는 스스로를 「미래의 순례자」라고 즐겨 불렀으나 그의 친구들은 「참을성 있는 예언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의 전기를 쓴 작가들은 그를 「시인」 「신비주의자」 「자유사상가」 「신의 인간」 「맑은 大氣 속의 자연인」 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차츰 사라지고 지금은 그에 대한 새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불란서의 인기있는 신문을 보면 데이야르와 말틴 루터 킹 복사와 영국의 울위치 주교를 한데 묶으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활동분야는 각기 다르나 이 세사람은 모두 우리시대가 당면한 격렬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조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데이야르는 인종의 평등보다 補完關係를 강조했고 비크리스찬 청중들에게 강연할땐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신」이라는 말을 피하고 대신 「종점」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것을 들은 같은 신자들은 이 신부가 이혼이나 안락사 등의 문제에도 멋대로 대답할 방종한 사제가 아닌가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오해였다. 가톨릭적 가르침에 있어서 데이야르만큼 正說的인 인물고 극히 드물었다.
교회의 질서와 과학의 기술사이에서 데이야르가 발견한 것은 모순이 아니라 다만 평행선이었다. 그에게는 이 두가지가 서로를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간의 영신적 과거와 미래는 동시성을 나타내며 그 둘은 서로에게 의미심장한 함축을 부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오로지 그의 공적이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길이 둘 다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며 결국은 한점에 모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가 가장 좋아한 文句는 『위로 올라가는 것은 모두 한점에 모인다』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바로 그의 사상의 골자이기도 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인간의 현상」에서 그는 『인간의 본성을 알아내는 것은 곧 세상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썼다. 이것이 보통 데이야르식 사고의 시발점이라고들 한다.
데이야르는 논쟁을 진전시키기 위해 이러한 짧고 단순한 문장들을 자주 사용했다. 그의 활력있는 언어는 그의 생애동안에 - 「베르둔」의 굴속에서나 몽고평원을 답사할때나 「뉴욕」의 예수회 연구원에 있을때나 - 항상 사촌 마르게리뜨와 서신을 나눈데서 얻어진 것이다.
한살 아래인 마르게리뜨는 어릴때부터 좋은 친구였으며 일생동안 그들 사이에 오간 편지는 수백통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의 사후 대부분이 출간되었는데 감동없이는 읽을 수 없다고 한다. 데이야르의 매력은 그가 우리시대가 당면한 두가지 특징 - 즉 고통과 회의감을 우리와 함께 나눌 수 있을만큼 이 世紀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점이다.
그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다리를 놓을려고 노력했으며 인간의 사고가 위로 향할수록 과학과 종교의 일치를 증명,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참을성 있는 예언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의 저서에 대한 자신의 태도이다. 『그것들을 斷想쯤으로 생각하시오. 나 자신 그것으로 일의 시작을 뜻할 뿐이니까』라고 했다. 참으로 개척자다운 사상가의 말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