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年(년)의 발자취] 本堂(본당)·敎會機關(교회기관) 어제와 오늘 ⑨ 충남 合德本堂(합덕본당)
諡福榮光(시복영광) 누린 殉敎者本堂(순교자본당)
9位(위) 福者(복자) 鮮血(선혈) 헛되지 않아
住民(주민) 95% 聖敎集團(성교집단) 이룩해
발행일1969-09-07 [제684호, 3면]
忠南線신례원역에서 뻐스로 약30분간 달리면 넓은 들판가운데 약간언덕 진곳에 수백년된 느티나무의 짙은 녹음속에 붉은 벽돌집이 아담하게 서있고 M子型으로 우뚝 솟은 双종각에선 은은한 종소리가 조석으로 넓은 들에 울려퍼지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충남 최고(最古)의 합덕성당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1980)에 초대 南레오 신부는 현재 본당공소인 양촌에 본당을 설립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교통이 좋고 발전성이 있는 현재의 합덕리로 10년만에 본당을 옮겼다. 초기 본당을 합덕리로 옮길 당시에는 교우수가 7가구40여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이 마을 130세대 950명중 95%에 해당하는 123세대 900명이 신자이며 공소신자까지 합하여 2300여명의 신자를 갖고 있는 대성당으로 발전했다.
남 신부가 처음 부임했을 때 이 고장에는 흉년이 들어 가난에 허덕이는 신자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 남 신부는 당신의 손발이요 공소순회의 유일한 것인 愛馬를 팔아 굶주림에 허덕이던 신자들에게 희사했다고 한다.
1906년 3대 慶헨리꼬 신부는 뒤떨어진 이 고장의 지역사회개발 책으로 교육사업에 착안, 현재 육아원자리에 4년제 사립학교를 설립, 매괴학교라 명명하여 신학문을 전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日人들의 공립학교가 설립된 후 자연 폐교되고 말았다. 경 신부는 평야지대인 이 고장에 당시 수십만평의 많은 토지를 교회용으로 구입, 전교책의 일환으로 많은 외교인과 가난한 영세 교우농가에 경작토록 하여 주민들 생활을 가난에서 구제했으며, 또 이로 인해 많은 경작자들이 입교했다고 한다.
그리고 추수한 벼 2천여석은 신학교의 식량으로 또는 양로원 기타 교회사업식량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한다.
7대 백필립보 신부(佛人)는 1929년 현재의 성당건물을 신축했다.
건평 200평의 붉은 벽돌집으로 된 이 건물을 신축하는데 1만8천여원이 들었다. 이 돈은 당시 쌀 1천8백 가마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그러나 교구의 원조 한푼없이 본당 신자들과 백 신부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 건립공사를 끝냈다.
또 1947년 백 신부는 해방 후 불우한 어린이를 위하여 육아원을 창설하여 소화보육원이라 명명, 성가 수녀원 수녀들에게 운영토록 했다.
이 소화보육원은 창립된지 21년간 수백의 불우한 아동을 육성하여 지금 사회에 나가 일하고 있고 수십명이 교우촌에 출가하여 첨례 때가 되면 친정 보육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6·25동난 때 백 신부는 당시 보좌로 있던 박노열 신부를 억지로 피난시키고 백 신부 자신은 체포되어 순교했다.
지금도 『내양을 위하여 내 생명을 바치노라』라는 백 신부의 유언을 되새기며 본당 신자들은 백 신부의 慈父的 사랑과 불굴의 투지를 못내 그리워하며 그 공덕을 높이 치하하고 길이 받들기 위하여 1957년 성금을 모아 본당 옆에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또한 내포라고 일컬어지는 합덕본당을 中心으로 한 삽교천 일대는 한국가톨릭 敎會史上 신앙의 싹트기 시작한 가톨릭의 발상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순교자를 낳은 이 고장선조들의 백년박해에도 굳건했던 백절불굴의 끈덕진 신앙은 치명의 영광과 아울러 한국천주교회를 꽃피우는 시복의 영광을 차지하는 복자 안드레아 김 신부를 비롯하여 9위 복자를 낳았으니 이는 곧 이 고장의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도 복자 안드레아 김 신부의 순교기념비(1946년 건립)와 동상(1966년 건립)이 본당에서 4km 떨어진 우강면 솔미에 우뚝솟아 있어 이 고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향하게 하고 있다. 또 금년 4월 30일, 복자 安안또니오 주교를 위시하여 吳베드로 신부·閔말딩 신부·黃석두(누까)·孫자선(도마) 5위 복자순교비가 작년 10월 6일 「로마」에서 시복된 영광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본당 교우들의 성금으로 본당에서 5km 떨어진 신리공소 즉 복자들이 바로 체포되었던 곳에 건립됐다.
합덕본당에서는 본당 설립 후 지금까지 16명의 사제와 1명의 수사가 탄생했고 30여명의 수녀를 배출했으니 이는 곧, 우연이 아니고 지난날 피로 물들인 많은 치명자들과 복자들의 기구와 안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연말 11번째로 본당주임자리를 이어받은 윤바오로 신부는 본당발전을 위해 사목위원회·재정위원회·소위원회 등을 조직 전통있는 이 본당이 근자의 답보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본당신자 모두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도록 평신도사도직의 맡은바 본분을 다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또한 본당신자들도 찬란했던 순교정신을 거울삼아 윤 신부를 주축으로 전교사업에 일로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고 있어 푸르른 내일을 내다보고 있다.
역대 본당신부
제1대 남 레오
제2대 홍 루까
제3대 경 헨리꼬
제4대 원 아드리아노
제5대 박 바오로 우철
제6대 경 헨리꼬
제7대 백 필립보 문필
제8대 박 바오로 노열
제9대 유 루도비꼬 성숙
제10대 최 로벨도 세구
제11대 윤 바오로 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