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18) 갈림길 ②
발행일1969-04-27 [제666호, 4면]
『얘 너 언제부터 그렇게 가슴이 툭 트였니? 가을하늘같구나』
혜경이는 어디까지나 빈정대는 태도였다. 눈을 흘기고 입을 삐죽이면서 그러나 장난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뭐냐?』
현주는 혜경이 빈정대면 그럴수록 반발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뭣이 그렇다는거냐?』
『애정만 있음 그런게 무슨 문제냐, 그런 얘기지 뭐겠어』
『애정?』
혜경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말했다.
『그럼 너 박 선생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다는거냐?』
『뭐?』
현주는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래. 그걸 따지러 왔어?』
목소리에 가시가 돋혔다.
『호호. 얘가 금시노했네…』
혜경이는 과장해 웃더니
『그건 현주 너의 프라이버시라구 할까? 구태어 건드리려구 한해… 다만 한가지 친구로서 의견을 말했을뿐이야…그러구말야 내가 오늘 찾아온건…』
그리고 잠깐 망서리다가
『미스터 주가 등산하자는거야 너서껀… 최 있지 않아? 그 청년말이야, 함께 간다는거야…』
장난스럽게 발음하느라고 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엿보였다.
『등산? 느닷없이…』
현주는 사실 뜻밖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 혜경이도
『나도 처음에는 뜻밖이었지… 그러나 차츰 너서껀 산에 오르는 것두 재미있을거라구 생각이 들더군… 최말이야 널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야… 기회가 좋지뭐니?』
그리고 뜻있게 웃었다.
『옳지 연극이구나… 기회를 만들기 위해…』
현주는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고 생각하니 도리어 역정이 치밀었다.
『아니야 일부러 꾸미는건 아니구… 미스터 주가 최서껀 무척 산타길 좋아한 모양이야… 약혼전후 오랫동안 산에 오르지 못했더니 다리에 멍이 들어 앉을 형편이라는거야 그걸 푼다 그것뿐이야, 날더러도 가자고 하잖아, 아암 가야지 내가 질순없거든… 그러나 네가 끼어야 좋을 것 같애… 같애서가 아니라 네가 없음 사내들끼리 저 앞으로 내빼면 난 어떡허지… 그래서 현주양을 모시자고 하는거야…』
『요 깍장이 너무 거짓말 꽤 능해졌구나.』
『아니야.』
현주가 한참 생각하다가
『가도록 하지. 나두 산에 못간지가 퍽으나 오래 됐어…』
순순히 승낙해주었다.
『정말이야?』
혜경이 도리어 놀라보였다.
『누굴 거짓말장이로 아나봐.』
『그렇다면 됐어.』
현주는 최호진이도 끼인다는 말을 듣고, 아무리 혜경이가 부인하더라도 저의(底意)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불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주는 생각했다.
(미리 그런것임을 알고 가는 이상 어떻게 나오나 보자…. 그건 그렇고 우울한 심정을 산에 올라 풀어보는게 진짜 목적이 될거니까…)
이렇게 생각했으나 현주는 최호진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우울증이 더해지는 듯했다.
(무슨 청년이 그래? 직접 데이트를 청할게지… 뭐 박훈씬가? 박 선생이 Y 선생을 통한 것은 있을법한 일이지마는…)
그러나 현주는 어떻든 혜경이와 약속한대로 그날 간단한 등산차림을 하고 정각에 지정한 뻐스 종점까지 갔다.
기다리지 않고 쉽게 탈 수 있는 탓이었을까 정각에 뻐스에서 내렸으나 다른 사람은 아직 오지않고 있었다. 그게 좀 서운한 심정이었으나 그런생각으로 두리번거리는데 택시 한대가 옆에 와 선다.
안에서 먼저 최호진군이 이건 아주 중무장의 등산차림으로 뛰어내리면서
『오래 기다렸어요?』
지극히 상냥하고 미안해 하는 표정으로 현주를 대해주었다.
『저는 지금 막 뻐스에서 내렸는걸요.』
『미안합니다. 기다리게 해서…』
그리고는 최군은 운전수가 창넘어로 손을 내밀고 주는 거스름을 받고
『아직 안왔지요? 주군 일행이…』
벙글거렸다.
『곧 오겠지요.』
둘은 말없이 차가 올길을 향해섰다.
그러나 최군은 할말이 많은 것 같으면서 그 말을 하지 못하는듯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이미 어쩌는가 보자는 현주가 아닌가? 최군의 동정(動靜)과 표정을 아닌체 보고 속으로 웃고 있었다.
『하아 이사람들 곧 안올텐가? 길가에 이렇게 오래 서있을 순 없고…』
하더니 최호진군은
『저기 다방에서 기다릴까요?』
다방을 가리켰다.
『다방에 들어가 앉아잇음 혜경이네가 와서 우릴 못찾지 않아요?』
『그러니까 현주씨만 다방에 앉아계시고 나는…』
『여기서 망을 보시겠다는거얘요?』
『그 그렇습니다.』
현주는 또 속으로 웃는데 이번에는 크림색의 자가용차가 둘 옆에 와서 섰다.
안에서 역시 등산차림을 한 혜경이와 주군이 여유있게 내리고 있었다.
『그냥 가지.』
오래 기다렸느냐는 말도 없이 주군이 말하고 혜경이는
『너, 오지 않을줄 알았더니…』
하면서 현주의 손을 잡고 좋아했다.
넷은 산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