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여전히 방심한 허탈한 상태에 있었다. 어떤 무서운 이적(異蹟)으로 천주의 이름까지 잊게 되었는지는 아무리해도 이해하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내 죽음과 마주서서 고독했다. 말할 수 없이 고독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생명의 상실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그리고 음울하기는커녕 오히려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환영의 혼란 속으로 내게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나는 이다지도 사랑했더란 말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 아침, 그 저녁, 저 길들을? 변화무쌍하고 신비로운 저 길들을, 사람의 발자취가 가득히 새겨진 저 길들을?, 대체 나는 길들을 우리 길들을, 세상의 길들을 이다지도 사랑했더란 말인가? 그 먼지 속에서 자라난 가난한 어린이로서 누가 제 꿈을 거기에 싣지 않았던가? 그 길들은 그 꿈을 유유히 장엄하게 어딘지 모르는 대양으로 실어간다.
가난한 이들의 꿈을 싣고 가는 빛과 그늘의 위대한 강물이여! 내 심장을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 놓은 것은 「메자르고」라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그 얼굴이 별안간 사라진 것으로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당장은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흐느끼지 않고 울고 있었다. 한숨 하나도 쉬지 않은 것 같이 생각된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울었다. 임종하는 이들이 우는 것을 본 그대로 울고 있었다.
그것도 역시 생명이 내게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수단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의사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나는 죽음을 할 수 있는 대로 겸허한 눈으로 쳐다보았는데 이 시선은 죽음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것을 달래보려는 은근한 희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비유가 그렇게까지 말 같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나는 마치 쉴삐스 미또네나 샹딸양(孃)을 쳐다본 것 같이 죽음을 바라보았다고 할 것이다.
슬프다! 그렇게 되려면 어린아이들과 같은 무지와 순박을 가져야할 것이다.
천주께서 내 임종을 하나의 모범 하나의 교훈으로 만드실 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그것이 사람들의 동정을 끌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사람들을 무척 사랑했고 또 산사람의 땀이 내게 아늑한 것임을 밝히 깨닫는다. 나는 눈물없이 죽지는 못할 것이다. 스토익한 냉정보다, 나와 관련없는 것이 없는데 어째서 내가 무감각한 사람들과 같은 죽음을 바라겠는가?
플르타크의 영웅들은 모두 공포와 권태를 내게 불러일으킨다. 만약에 내가 이런 변장을 하고 천국에 들어간다면 내 호수천신까지도 웃을 것 같다.
왜 걱정을 하고, 무엇 때문에 지레짐작을 한단 말인가? 무서우면 무섭다고 부끄럼 없이 말하리라. 그러니까 주의 얼굴이 내 눈앞에 나타날 적에 그의 첫눈길이 안도시키는 눈길이기를! (「베르나노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