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頂點-미사
전례를 생활화 할려는 이 과업을 우리는 어떻게 수행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사업과 일상의 노고와 우리 이마의 땀으로써 해나가고 예수·그리스도의 사업을 통해서 그리고 당신의 천상천하의 권능을 우리에게 성취하심으로 그 과업을 해나간다. 그러면 미사는 엄청난 과정에서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온 인류와 그리스도교 생활의 중심점이요 절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속선물로 천주 성자와 결합하여 천주 성부께 봉헌하기 위하여 우리인간의 사업과 투쟁과 기쁨과 슬픔과 성공과 우리의 모든 것을 이 미사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서 이 일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사는 우리의 공동예배요, 천주의 모든 양자와 양녀들의 집회인 까닭이다. 따라서 미사는 공동으로 봉헌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의 희생이며 모든 그리스도 회원들이 바라는 간절한 소망의 구속이다. 이런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미사 참예때 말하고 행했던 바를 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전례를 증명하는 것이다.
■ 實踐的 典禮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우리에 대한 천주님의 뜻을 알아야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사람과 사업장의 친구들과 매일 사귀는 친구들을 생각해야 한다.
교황 삐오 12세께서 1947년 전례에 관한 회칙 가운데서 『그리스도 신자의 가장 긴요한 의무는 전례적 생활을 하는 것이고 전례의 초자연적 정신을 증진하며 소중히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분이 항시 교회 안에서 생활하거나 전례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해야 할 행동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티깐」 공의회가 전례에 대한 헌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례는 교회의 활동을 인도하는 頂点이요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솟아나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 世上의 救贖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에 나오는 것은 사랑하심으로 당신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천주께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약속으로 우리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그리스도교적 책임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들의 자유의 사로 수락한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영성체 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서 「아멘」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인정하고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영세 때의 맹세와 그리스도안에 생활할 것을 새롭게 하고 미사에서 나와서 주일 이외의 평상시에는 그리스도 신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사랑과 평화의 생활을 함으로써 끊임없이 우리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안에 부활하며 우리자신을 항상 그리스도께 의탁해간다.
전례에 있어서 우리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세상의 구속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미사때 우리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우리 생활 가운데서 당신 구속은혜에 협력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모시고 가는 것은 우리 각 개인의 구속생활의 초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된다.
■ 派遣
미사에 포함된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세상과 항상 접촉을 갖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영향을 주는 것이다. 『미사가 끝났으니 돌아가십시오』하는 말은 『가십시오 여러분은 전교를 위해서 파견됩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주린자를 먹이고 헐벗은 이에게 의복을 주고 무식한 이를 가르치며 옥에 갇힌 이를 찾아보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것을 주는 그리스도교적 전교인 것이다. 모든 자선행위는 세말에 판 받게될 것이다.
우리가 미사때 행하고 말하며 변화되고 체득한 것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사업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우리가 매일 사귀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것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해결함은 우리에게 위임된 바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심을 갖는 것은 진리에 대한 시험이고, 미사와 성사에서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와 결합된 깊이를 시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파악하기 힘든 개념이다. 미사를 전례의 인도자로 관찰해왔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실제로 미사에는 그러한 의미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간사업 속에서 나타내야할 여러 가지 전품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을 우리와 함께 제단 앞으로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룩한 전례를 진실로 인식하려면 우리자신도 거룩한 전례를 인식하는 것이 긴요하며 따라서 인간사업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긴요하다. (계속)
라일리 마테오 神父(꼴룸바노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