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㉘ <모세時代(시대)> ⑦ 快樂(쾌락)찾아 忘恩(망은)하는 무리
慈父的(자부적) 사랑으로 지켜주고 싸워주고 이끌어 주시는 분
발행일1969-09-14 [제685호, 2면]
■ 順從하지 않는 百姓
『야훼께 노래를 부르라 이는 그이가 아주 뛰어나신 이시며 말과 그 기병을 바닷속에 던져버리셨음이로다』(출애 15·21) 홍해를 건널 때 야훼께서 뒤쫓아 오는 에집트의 군대로부터 이스라엘사람들을 구해주신 직후에 모세의 누이요 女豫言者인 「미르얌」은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러나 이 노래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스라엘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광야의 행진은 고되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모든 것이 귀찮고 공연한 고생을 시키는 모세와 아아론이 원망스러웠다. 『에집트 땅에서 우리가 고기남비 옆에 앉았던 시절, 빵을 배불리 먹던 시절에, 우리가 차라리 야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당신들은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이 단체를 모조리 굶어죽도록 만들었도다』(출애 16·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리라는 희망도 이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생활의 일시적 고초를 극복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하느님에 대한 신뢰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세의 傅求를 들으시어 바윗돌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셨고 또 「만나」로 그들의 주린 배를 채우게 하셨다.(만나는 시나이 반도에 많은 「타마리스크」 나무의 잎에 寄生하는 「코치니일」 虫으로 말미암아 맺히는 낟알 모양의단 진액으로 오늘의 아라비아사람들도 즐겨먹는 天然食物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사람들은 「만나」만으로는 만족 할 수 없었다. 더욱 욕심을 부려 에집트에서 먹던 음식을 그리워했다. 머리위에 하느님의 구름이 빛나고 있는데도 그들의 배는 지난날의 맛좋은 음식만을 찾는 것이다.
민수기에 의하면 이 백성을 인도하는데 지친 모세는 야훼께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그들이 나에게 울며 먹을 고기를 달라고 하니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가 나에게 어디서 생기겠나이까. 나에게는 너무 무거워서 나홀로 이 온 백성을 안고 갈수가 없나이다. 나는 <당신이 나쁘게 행함을> 보기 싫사오니 만일 내가 당신의 두눈에 총애를 입을 수 있사오면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하심보다 차라리 나를 꼭 죽여주소서』(민수 11·14~15) 後代의 성경 筆寫者들은 <당신이 나쁘게 행함>이란 말이 너무도 어이없게 여겨져 <나의 불행>이란 말로 수정하였다.
어쨌든 하느님은 당신 종의 이 무엄한 불평을 들어주시고, 70명의 장로들을 선정하여 모세를 돕게 하셨다. 그리고 먹을 고기를 달라는 백성들의 원도 풀어주셨다.
(메추라기 이야기는 출애굽기 16·13 민수기 11·31~34에 두번 나오는데, 전자는 祭官系史料요 후자는 J史料와 E史料의 혼합으로서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메추라기는 봄철에 아프리카에서 시나이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동하는 食用鳥類이며 오늘날에도 가끔 시나이 광야를 휘덮는다고 한다.)
이스라엘사람들은 말하자면 김나는 고기남비 옆에 앉아서 하느님의 現存을 체험하고 많은 음식이 쏟아져 나오는 魔術的식탁 앞에 앉아서 하느님의 백성行勢를 하려는 그런 백성이었다. 그러나 남비 속의 통닭이 구원일수 없고 또 포식이 축복일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생활수준」을 차지하였으나 그로 因하여 오히려 해를 보았다.(민수기 11·34 「욕심의 무덤」 참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다.
이와 같이 성경저자들은 「하느님께 신뢰하지 않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자손들에게 성조 아브라함과 같이 신뢰와 믿음의 길을 걷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요약하면 ①하느님은 牧者가 그 양떼를 인도하듯이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며 ②아버지가 그 자녀를 보살피듯이 당신 백성을 보살펴주시고 ③또 당신백 성을 위해 싸워주신다는 것이다.(아말레크족과의 싸움 참조-출애 17·8이하) 이 가르침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것으로 살기 때문이다』(신명 8·3 참조)
모세가 이스라엘사람들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어 홍해를 거쳐 하느님에게 속량된 새로운 생활로 인도하고, 불기둥이 안내하는 대로 그들에게 기적적인 빵(만나)과 고기(메추라기)를 먹이고 바위에서 샘솟는 물을 마시워가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듯이-「갈바리아」산에서 희생되신 빠스카의 어린양이시며 새로운 모세이신 그리스도는 그 救贖의 聖血이라는 새로운 홍해 즉 성세성사를 통해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참된 자유의 생활로 인도하신다. 속량된 자(성세받은 자)는 이 크리스찬생활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여, 일종의 사막인 현세에서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마침내는 그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