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敎會(교회)에 回春(회춘)을 가져다준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마지막 宣言(선언)에도 당황 않고
敎皇(교황)다운 臨終(임종)맞으려 努力(노력)
癌(암)으로 苦生(고생)하는 自身(자신)을
敎會(교회)와 平和(평화)위한 祭物(제물)로
▲5월 30일 목요일 전반적으로 호전된 것 같았다. 아침 영성체후에 시의들의 검진결과를 희망적으로 발표했다. 그래서 시의 한사람은 대학강의를 위해 떠나가기까지 했다. 교황께서는 평온한 상태로 오랫동안 떠스따 추기경과 환담하시면서 다음 성신강림축일에는 미사를 지내고 「발코니」에서 교우들에게 강복을 주고 인사를 나눌 생각을 가지셨다. 같은 날 「루르드」에서 알프링 추기경이 화란순례단의 이름으로 격려 「메시지」를 보내왔다. 교황께서는 웃으시면서 자기 조카 신부에게 『내 좀 더 나아지면 탑에 가서 쉬고 싶은데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
저녁에는 치꼬냐니 추기경과 델아파 주교님을 접견하시고 희망적인 말로 환담하셨다. 밤 11시30분경에 갑자기 위장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전반적인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시의의 검진결과로 수술도할 수없는 상태로 암의 조기진단이 확대되어 여러 세포조직이 파열되어 내출혈이 심해졌다. 고통은 점점 더 심해가서 다량의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미 종말이 가까워 왔음은 어쩔 수 없었다.
▲5월 31일 금요일 페데리꼬 수사가 침상 옆에서 「사랑의 불꽃」 그리고 복음주해를 읽어드린 후에 영성체를 하게 했다.
교황께서는 혼자서 한시간 이상 기구하셨다. 10시에 다시 발도니 교수와 맛소니 교수의 종합진단결과로 사태의 중합과 회복가능이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
개인 비서는 자기의 의무를 완수하기위해 교황침상 가까이 가서 될수 있는 대로 욧점만 따서 평범한 말로서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를 억제하면서 『성하! 성하께서 라디니 주교님의 임종시에 당신의 의무를 수행하신 것처럼 저의 의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바로 때가 왔읍니다. 주께서 성하를 부르십니다』라고 전했다. 교황께서는 조금도 당황하시지 않고 잠깐 묵묵하시다가 『의사의 의견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으시자 『성하 끝이라 합디다. 암이 갈데까지 갔읍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그럼 라디니 주교처럼 다시한번 수술한답디까』 『필요없읍니다. 성하의 체력이 저항 한계를 넘었습니다』하며 비서가 슬픔의 격정을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오히려 교황께서는 그를 진정시키시고 생애의 종말에 대비해서 해야할 여러 가지 일을 섬세히 지시하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주교나 교황으로서 손색없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오』하고 간청했다.
자기책상 설합에 얼마쯤 남아있던 돈을 국무성으로 넘기라고 지시하시고 『주께서 나를 찾으실 때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한 상태로 맞이하고 싶습니다』하고 마지막으로 국무성장관을 부르시어 『추기경님! 주의 집으로 가시겠읍니다라는 말이 나를 기쁘게 해줍니다. 정말 이말로 내 마음은 기쁨에 가득 찼읍니다』하고 위선 인사하셨다. 11시에 고해신부를 위시해서 추기경 주교 의사 수녀들이 둘러있는 가운데 침상에서 부축을 받고 고죄경을 염하신후 영성체를 하시고 고해신부를 쳐다보시면서 『주님과 함께있는 내 옆에 계셔주십시오』했다.
주위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약15분 동안 교황의 마지막 유시를 들었다. 마치 장엄한 교황 예식에 참석한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내 침상은 제단입니다. 제단은 희생물을 요구합니다.
바로 여기 희생물이 누어 있읍니다. 나의 생명을 교회와 공의회의 계속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모든 크리스찬의 일치를 위해 바칩니다.』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