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되고 우리의 전선이 월남까지 연장됐다. 그동안 많은 장병들이 자유와 정의의 사자로서 수훈을 쌓았고 또 죽어갔다. 그래도 고국의 어버이들은 『돈벌이 하러갔다』고 좋아했을뿐 피안의 불 바라보듯 무심했다.
과연 군종신부들은 「딸라」 미사나 드리고 교제술이나 마시며 장병들은 전기냉장고 · 테레비 · 카메라 등 한살림 잘 장만해 금의귀향했는지 궁금하다.
무덥고 습기찬 월남땅. 오랜 전란에 시달려 내일의 희망모다 오늘을 지탱하기에 급급한 웃음잃은 월남민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또 외부로부터의 간섭과 지배로 점철된 역사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정과 배타적인 국민성을 길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젠 한국인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6·25를 통해 공산주의의 잔학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국군, 엄한 군율과 도의심이 높고 이웃을 아는 한국군, 진정 자유와 평화의 사도로서 형제적 우의로서 그들을 돕고 있는 한국군을 그들은 충심으로 감사하며 한국의 경제자립과 투철한 반공정신, 막강한 한국군의 위용을 부러워하며 존경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히 이룩된 것은 아닌것 같아 주월한국군 통합사령부의 軍宗 황익성 신부에게 들어봤다.
군종활동이라면 일반적으로 장병들의 종교행사와 신앙 · 인격교육 · 상담 등 영신지도와 공공복지 및 재해지구 대민사업이다. 그런데 특히 전선(戰線)없는 우러남 같은 전장(戰場)에서의 군종활동은 작전수행에 무엇보다 효과적이며 월남의 경우에선 심리전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월남에는 가톨릭신자가 전체인구의 12%가 넘고 「사이곤」 같은 대도시의 지성인층은 30% 이상이란 높은 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월남 정정(政情)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공산주의에 대적할 사상적 뒷받침과 개개인의 근면, 성실성 그리고 신뢰받는 책임감이 복음의 말씀으로 불안한 사회에 파고든 것이 아닐까?
병원이나 사회복지단체는 물론 정부고위층에 상당수의 가톨릭신자들이 있고 월남중고등학교의 90% 이상이 가톨릭학교로서 월남종군신부단이 교목(校牧) 아닌 실제관리자로서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군종단에 원조를 청해오고 있다.
주월한국군 채 사령관도 대민지원에 의한 심리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열사람의 베트콩을 놓치는 일이 있드라도 한사람의 양민을 구해야 한다』는 「모또」를 내걸고 통합사령부 내에 민사심리전처(民事心理戰處)를 두어 각종 대민지원 및 구호사업을 일괄 관장처리케 했으며 군종단과 협의하여 성단건립, 학교 고아원 증축, 피난민 의료진료, 자매결연 등 수많은 일을 해왔다.
군종단은 또 가톨릭 구제위원회를 통해 수백만 「톤」 이상의 식품과 의료의약품을 피난민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군종신부들의 노력으로 채 사령관은 작년 1월 8일 「사이곤」의 빈 대주교를 비롯한 고위성직자 10여명을 초청 만찬회를 베풀면서 한 · 월 유대 강화와 구호사업을 의논했고 9월에는 「사이곤」에 「자화」 성당을 지어 주민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으며 얼마전에는 비둘기부대의 협조로 「사이곤」 「안녕」지구에 3만평의 대지를 밀어 택지를 조성하고 4백동의 난민촌을 건립키로 했으며 가톨릭구제회에서 식생활도 해결해주도록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군종활동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다. 최전선 어떤 지역에서던지 교우가 있는 곳엔 달려가 성사를 주어야 하고 5·6명만 모여도 미사성제를 집전해야 하며 날로 늘어나는 영세입교자를 지도해야 하고 장병들의 영신지도와 상담에 응해야 한다.
지금 월남전선에는 4천8백여 신자 장병과 신부 여섯분이 종군하고 있는데 이들 장병이 한번 작전에 나가면 10일 이상 초긴장상태에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을 헤매다가 본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정성어린 위문편지나 서적들이 아닌 나약하고 잡다한 현대 「무드」와 상술(商術)에 눈먼 「섹스 어필」한 대중잡지만이 굴러 돌아가고 있으니 모처럼의 극적계기도 무산되고마는, 아니 영신을 좀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래도 「프로테스탄트」 서적은 가끔 보인다. 어떤 병사는 『가톨릭에도 성서가 있느냐?』고 물어온다.
참으로 가슴을 쥐어짜고 싶은 심경이다. 고국에선 『돈벌어 책사보라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 장병들은 자기봉급의 80% 이상을 고국 가족을 위해 송금, 기타 공과금을 제하고 나면 5내지 10%로 어렵게 생활해야 하는 딱한 사정이다. 지난해 수원 윤 주교가 40여권의 책을 보내 장병들이 서로 다투어 돌려 읽는 모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또 서울의 조창선씨는 매월 자기봉급에서 2천원을 희사, 책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한두사람의 성의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성서나 성인전을 필요로 하며 위문편지도 수취인 없는 무데기 글보다 형제에의 사랑과 진실이 담긴 글을 바라고 있다.
주월군종신부들의 주소를 소개하면 ▲군우 151-501 주월한국군통합사령부 군종참모부 황익성 신부 ▲군우 151-501 십자성부대 군종참모부 최경환 신부 ▲군우 151-501 백마부대 군종참모부 김충호 신부 ▲군우 151-501 맹호부대 군종참모부 김계춘 신부 ▲군우 151-501 포사령부 군종참모부 정명조 신부 ▲군우 151-501 청룡부대 군종참모부 긴종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