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年(년)의 발자취] 本堂(본당)·敎會機關(교회기관) 어제와 오늘 ⑩ 경기도 幸州本堂(행주본당)
幸州山城(행주산성) 아래 風雨半世紀(풍우반세기)
한땐 交通要地(교통요지) 서울의 關門(관문)
지금은 落後(낙후)돼 公所(공소)로…
발행일1969-09-14 [제685호, 3면]
【서울】 행주산성(幸州山城)이라면 임진왜란 때 權慄 장군이 몰려오는 왜적을 맞아 성내 백성들과 함께 사투(死鬪)를 벌였던 곳으로 아낙네들까지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날랐다는 얘기와 함께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주말이면 서울교외선을 타고 능곡역에 내린 시민들이 한번씩은 들려보는 곳이다.
그러나 이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德陽山) 아래 한강을 바라보며 조용히 펼쳐진 행주 外里라는 마을에 거의 70년의 역사를 지닌 성당이 있다는걸 아는 신자는 드물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한식(韓式)가옥 성당엔 뾰족한 종탑도 십자가도 보이지 않고 오래된 골개와 틈서리엔 이름모를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풍우에 시달린 오랜 연륜을 쉽게 느끼게 한다.
초대 한국교회의 쌍벽이라 할 약현, 명동 두 성당이 중부지방을 양분하여 관할했던 1890년대 행주마을은 약현본당 공소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곳은 지리적으로 보아 서해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뱃길의 길목에 위치한 포구(浦口)로 육로가 불편했던 당시수색, 문산, 금촌 일산등지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인근 지방의 포교를 위해선 본당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지니고 있었다.
1901년 몽소승천을 기해 20여평의 성당이 준공되고 신부를 모셔옴로써 인근지역을 관할하는 본당이 되기까지는 몇몇 열심한 신자들이 약현엘 찾아가 이런 사정을 누차 호소한 수고가 깃들어 있다.
이들 중 지난 8월 4일 83세로 세상을 떠난 유익정(베드로)씨와 그의 부친 가밀노는 대대로 이 지방에 살아오면서 성당과 역사를 같이해온 분들로 두번에 걸친 성당이 전과 증축을 지휘했고 보명(普明) 학습강습소를 차려 어린이교육에 힘쓰는가하면 平生을 본당會長으로 있으면서 모든 일을 도맡다 싶이 해왔다.
그후 몇몇 활동적인 주임신부가 거쳐가면서 본당을 중심으로 동리의 일이 의논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으나 그리 특기할만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한채 1957년 수색에 본당이 설정되면서 공소로 격하되고 말았다.
역대 신부 중 김아우구스띠 노신부는 가난한 이곳에서 신자들과 같이 피죽먹으며 본당 기틀을 마련키 위해 동분서주했고 토요일이면 나막신에 지팡이 짚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내일이 주일이요」하고 알릴만큼 포교에 열심이었다한다.
그리고 아직도 나이 많은 교우들이 애석하게 생각하는 신부가 있는데 2대로 부임한 김요셉 신부는 그해 4월에 서품되어 바로 이곳으로 와서 이 지방을 휩쓴 독감에 앓는 교우들을 주야로 돌보다가 10월에 마침내 자신이 그 독감에 걸려 2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교우들이 신부의 상여를 모시고 용산성직자묘지까지가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한다.
지금 성당은 1901년 준공이후 두번을 옮긴 자리에 서있다. 1918년에 한번 옮겼고 이때만 해도 한강의 제방이 없어 장마가 되면 자주 물에 잠기므로 1928년 현 위치로 옮기고 말았다.
이 두번째 성당을 옮길 때 약2km거리에 있는 능곡(陵谷)으로 옮기자는 의견을 따랐던들 본당으로 계속 유지되었을 터인데 그래도 교우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든 外里에서 성당을 떠내 보내기가 싫어 마을 가운데 높직한 터로 움긴 情이 날로 발전하는 고을을 외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밝았던들 해방이후 끊어진 뱃길보다 내지로 뻗는 신작로를 따라 이 일대에 퍼진 마을들을 포함해서 족히 발전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현재는 공소관하 幸州 內1·2리와 外1·2리 신평리 5개 마을을 합해 270명 교우가 주일이면 모여앉아 공소예절을 바치고 있다.
고색이 짙은 제대와 30년은 되었을 「올갠」이 성당의 조용했던 역사를 얘기해 준다.
그래도 이 본당은 3명의 성직자를 배출한 자랑을 지니고 있다.
유봉구(수원·북수동주임) 유한구(在美) 형제 신부인데 이들은 작고한 柳익정 회장의 아들이다.
대전교구장 황민성 주교는 이곳에서 태어나 4살 때까지 지냈다.
역대 주임신부
제1대 김아우구스띠노
제2대 김요셉
제3대 황정수(요셉)
제4대 이안드레아
제5대 윤바오로
제6대 이요셉
제7대 박우철(바오로)
제8대 김유용(필립보)
제9대 김성환(빅토리노)
제10대 임중신(마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