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그의 6週忌(주기) 맞아 敎訓(교훈)을 되새긴다
바오로 6世(세)를 推薦(추천)
내後継者(후계자)로 몬띠니 卿(경)이
適當(적당)하리라 生覺(생각)됩니다
언제까지나 故鄕生覺(고향생각) 잊지 않고
「病者聖事(병자성사)」神父(신부)가 틀리자
順序(순서)를 바로잡아 주기도
마지막 순간에도 人事(인사)말 傳(전)해
▲5월 31일(속) 『지금이 마지막 시간에 나는 평온하며 내주께서 자기의 자애로 나를 내치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비록 부당하지만 나는 내 생애를 통해 진리와 정의와 사람과 복음의 양순함과 겸손함만을 찾고 경외했읍니다. 나의 지상 생애는 끝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생활하시고 교회는 그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모든 영혼들이 하나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잠시 묵묵한 후 자기경당 예절을 맡은 리르데 신부가 병자의 성사를 집전하다 너무 비통한 나머지 당황해서 순서를 틀리자 교황은 바로 고쳐주시며 마지막에 모든 이에게 강복을 주시면서 『모두들 용기를 내시오. 아직 지금은 레귀엠의 때가 아닙니다』하고 곁에서 있던 치코냐니 추기경을 보고 『나에게 협력한 모든 일에 감사하오. 그리고 천국에 가서 당신 형 가에따노사에게 인사 전하지요』하고 주위의 한사람 한사람을 서서히 돌아보며 몇마디씩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 감격적 순간에 또한 자기 후계자의 이름을 밝히며 『내 생각으로는 내 후계자에 몬띠니 추기경으로 생각되며 추기경들의 표가 그에게로 집중되리라 믿습니다』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17시경에는 「로마」에 있는 모든 추기경들과 측근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차근차근히 하직인사를 했다. 19시경 다시 고통이 심해져서 시의들은 진정제를 썼다. 밤에 고향 형제들과 조카들도 도착되었다. 그들과 함께 각지에서 온 격려와 위로의 「멧시지」를 들었다.
▲6월 1일 토요일 새벽 3시에 겨우 다시 의식을 회복했으나 아직도 몽롱한 상태에서 「빠리」에 있던 자기시의를 연상 오인하고 불란서어로 말하다 옆에 자기 동생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색을 하면서 『그래 훨씬 나아진 것 같다. 그러나 주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떠날 준비는 다되었다』하시고 미소지은 후 다시 추기경들과 측근들과 환담했다. 침상에 일어나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간밤에는 정말 떠나는 줄 알았는데 주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몰라. 좀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또 악화되면 실망하겠지』하시고 복음의 나라로의 부활대목을 해설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말따의 신덕을 시험하시느라고 너 이것을 믿느냐? 하셨지… 우리도 믿습니다』 힘있게 결론지으시고 다시 의식을 잃고 말으셨다. 추기경과 조카 신부가 합동미사를 지냈다.
아침나절에는 끊임없이 여러 방문객들이 교황의 창백한 무의식상태의 모습을 보고 고요히 물러갔다. 15시45분 다시 의식을 회복하시고 건설적이고 재미있는 환담을 계속하시면서 곁에 서있는 베르가모 주교를 보고 특히 자기 고향에 자기의 감회어린 인사말을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방안에는 계속해서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다. 천주경을 위시해서 묵주인공·성인기도문·성심도문·성모찬미도문·삼종경·감사찬미경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기구 중에 여러 대목을 묵상하시면서 교황께서 병자와 어린이와 가난한자와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주강복을 내리셨다. 기구의 지향을 말하기위해 첸또 추기경과 고해신부는 번갈아가며 교황침상에 다가섰다. 자주 무의식상태에 빠졌으나 회복했을 때는 곧 맑은 정신이 되었다. 방안에 성물과 기억을 회상케하는 물품들이 많았지만 벌써 천상사물에 대한 묵상에 잠겨 있는 듯 십자가만 바라다보셨다.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