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公開(비공개) 手記(수기) 秘話(비화)] 偉大(위대)한 司牧者(사목자) 요한 23世(세) 그의 6週忌(주기) 맞아 敎訓(교훈)을 되새긴다
「미사가 끝납니다」와 함께
敎皇(교황)의 地上旅程(지상여정)도 끝나
▲6월 2일 성신강림 5시30분 국무성장관 추기경의 미사가 있은 후 비서는 교황에게 다시 한 번 오늘 미사경문을 읽어 드렸다.
교황은 병상에서 자기가 중동에서 사명을 띠고 있을 때 「이스탄불」 성신 대성전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묵상하던 일을 되새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시고 그저 음음하면서 대답하셨다. 수많은 가정에서 병원에서 그리고 수도원에서 밤을 새우며 교황을 위해 기도드렸고 수천의 「로마」시민은 밤길을 도와 「로마」 근교 성모성지를 참배했고 「밀라노」에서는 성신강림 축일밤에 2만명의 청년들이 몬띠니 대주교와 함께 기도드렸다. 대주교는 감격적인 강론을 통해 죽음에 처한 요한 교황의 모범적인 사제상을 찬양하면서 『이순간 교황을 생각할 때 깊은 슬픔과 말할 수없는 고통으로 벅찹니다. 그러나 모범적인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살으시다 이제 그리스도를 만나러 유명의 기로에서 초연하게 대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그의 신앙과 위대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그의 유언 유산 즉 최후의 장엄한 「메시지」인 평화를 물려받아야 할 의무가 있읍니다.
우리시대의 어떤 사람의 말이나 어떤 스승의 말이나 그리고 어떤 군주 어떤 선지자 어떤 교황의 말은 온 세상에 이렇게 높히 그리고 친밀하게 울려 퍼진 일은 없읍니다』라고 하셨다.
8시경 여러 교도소에서는 여러 대의 미사에 참여하면서 죄수들은 『교황성부여 우리는 사람의 정으로 당신가까이 있읍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태리 정부에서는 교황의 위독상태로 공화국 기념일 행사를 중지했다.
저녁부터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위독해졌으나 새벽녁에는 정상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꾸 혼수상태에 빠지는 도수가 더해갔다.
교황은 자신의 사태를 끼고 자주 벽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십자가를 주시하면서 낮12시경에 『지금 몇시입니까』라고 물으실 때 삼종소리가 들려와 그를 감격케 했다. 침상머리에 서있는 조카 사베리오에게 힘에 겨운 목소리로 『좀 비켜다오 십자가가 가려져서 안 보인다』라고 했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밤10시경 더욱 침중했지만 약물로 조금 나아지신 것 같았다. 저녁 9시에 첸또 추기경이 임종자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교황의 강장한 체력은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했으나 돌이킬 수없는 위독상태는 더욱 침중해졌다.
▲6월 3일 월요일 새벽 3시 교황은 거듭거듭 『주여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을 당신은 아시나이다』라고 했다. 아침 나절에 가끔 입속말을 하며 십자 성호를 그을려는 때 외에는 늘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정오경에 운명하시는 줄 알았으나 오후 3시에는 다시 정상적인 호흡을 하셨다.
17시 광장에는 뜨랄리아 추기경이 집전하는 병자를 위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황 주변에는 친척들과 시의 측근자들이 교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고해 지도신부는 계속해서 임종경을 외웠다. 계속해서 광장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19·40분경 마이크를 통해 『미사가 끝납니다』라는 말이 거실까지 똑똑히 들려왔다. 교황께서는 무슨 말을 할듯이 약간 입술을 움직이다 숨소리가 잠잠해졌다. 미사가 끝나자 교황의 지상 여정도 끝났다. 시의들이 경건하게 구부렸다. 다시 일어섰을 때 그들의 눈망울은 요한 23세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19시45분이었다. 모두 끊어 『주의 찬사들은 너를 천국으로 인도할 지어다』라는 기도문을 외우고 이어서 「마니피깔」과 감사 찬미경 「떼 데움」을 창한 다음 한사람씩 교황의 손을 친구하고 고요히 물러났다. 즉시 델아꽈 띳세랑 마셀라 추기경이 들어오시어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망확인 절차를 마치고 공식발표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멀리서도 볼 수 있게 거실을 조명했다. 조각가 만쑤는 석고로 교황의 얼굴과 손의 모습을 떳다. 밤10시경에 십자를 쥐게 한 체 염을 해서 다음날 「베드로」대성전 중앙제단 앞에 모시도록 했다. (끝)
까뽀빌라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