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39) 분수령 ⑤
발행일1969-09-28 [제687호, 4면]
『왜 그렇게 꿈쩍하지 않았지?』
Y 교수는 현주가 자리에 앉아, 굳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 물었다.
『공연히 바빠서요.』
『바쁘겠지. 그러나 하품 나는 것보다 바쁜게 좋지. 그런데?』
『천천히 얘기하지요.』
『무슨 심각한 용건 같은데… 어디 좋은 사람이라도 생겼나요?』
『선생님두…』
『아닌가? 그럼?』
현주는 망설이다가
『용신군 때문에 여쭐 말씀이 있어 왔어요.』
용건으로 들어갔다.
『용신군 때문에?』
『예.』
Y 교수도 용신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모양, 눈에 활기를 띠더니
『어떤 이야긴데?』
얼른 말하고 재촉하는 듯했다.
『지금 다리 밑에 살고 있는걸 아시지요?』
『글쎄 말이오. 그래서?』
『마침 빈방도 있고 해서 우선 저희 집에 데려다가 안정을 시키려고 해요.』
『말을 들을까요?』
『생각해 본다고 했으니까요…』
Y 교수가 눈을 감고 얼마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더니
그것 두 한 방법일지 르겠군… 원체 아이가 고집이 센데다가 따뜻한 가정 분위기랄까 이런 것에 매말라 있거든요. 현주가 집에 데려다 동생처럼 조카처럼 사랑을 베풀어주고 타일르면 누그러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한가지 그 애를 선도(善導)하는데 필요한 것은 이 기회에 전과를 시켜 제가 지향하는 음악방면으로 나가도록 마련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주는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과를 바꾼다? 음악으로 전향한다?』
Y 교수는 또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그게 좀어렵다 그런 말이오. 박 선생을 납득시켜야 될텐데…』
이마에 주름살이 잡히면서 Y 교수가 말했다.
『박 선생이 납득을 하지 않아요?』
현주는 도리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일찍 화상(畵商)을 경영한 일도 있고 그림에 이해가 깊어 그것 때문에 현주와 펜팔을 트게된 박훈씨가 아닌가? 아들의 소질이 음악에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본인이 완강히 그길로 나가겠다고 버티고 있는 이상 납득여부가 있을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납득시키기 어려워요』
『그건 왜 그럴까요?』
현주는 저도 모르게 머리가 개웃거려졌다.
『박 선생이 전 박 선생이 아닌 때문이오.』
Y 교수는 끊어 말했다.
『예엣?』
『전 같으면 용신이가 집에서 뛰쳐나가지도 않았을 거고, 과를 바꿔 음악방면으로 나가겠다고 했다면 문제없이 그 뒷받침을 해주었을 거요. 그런데 지금은… 뭐라구하는 줄아시오? 잘되면 모르지마는, 겨우 유행가 나부랭이나 부르게 되던가, 밴드마스터가 되어 연예인으로 떨어지는 것밖에 없다는 거요…』
현주는, 또 다른 방면으로 박훈씨의 내면의 변화를 발견한 것 같아 몸서리가 졌다. 그러고 보니 박훈씨가 가련하게 여겨지는 동시에 용신이 더욱 가련했다.
『그렇게 안되도록, 본격적으로 음악하게 되도록하면 될거아닙니까?』
『그게 박훈으로서는… 지금 박훈으로서는…』
『알겠읍니다.』
『어떻게 안다는 거요?』
『더욱 제가 맡아 음악가로 대성시켜 주겠읍니다.』
『하하, 장한 생각이군… 그러나…』
『걱정 마세요. 좋은 스승에게 붙여주어 렛슨을 받게하고 외국에 가서 연찬할 길을 티워주겠어요』
『하하 점점 더 장하군』
현주는 흥분해졌다.
『어떤 사명감 같은게 느껴져요』
『사명감?』
『꼭 집어 이야기할 수 없으나 용신이를 음악가로 대성시켜주는데 저의 전력을 바치는 것이 사명같이 느껴져요』
Y 교수는 또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가
『좋소. 생각각대로 해 보오. 박훈씨의 일은 나한테 맡기고…』
현주의 일에 협조할 뜻을 보였다. 현주는 가슴속이 가득찬 것 같은 상태로 Y 교수 집에서 나왔다.
다리 밑으로 용신이를 찾아갔다.
『기다렸습니다.』
용신이의 얼굴과 어조가 명랑했다.
『우리 집에 가지?』
『선생님의 말과 성의를 저버릴 수 없읍니다』
『됐어…』
다리 밑에서 현주네 집까지의 이사는 무척 간단한 것이었다.
짐이라고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잡아 뒤에 뚜껑을 열고 간단한 짐을 싣고 둘이 쿳션에 나란히 앉아 현주네 집으로 왔다. 방은 미리 소제를 해놓았고 책상도 있던 것을 차려 놓았으므로 넓은 느낌은 아니나 아담한 인상을 풍겨주었다.
현주가 거처하는 방과는 떨어져있는 위치여서 용신이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오랫만에 찡그리지 않는 얼굴로 용신이는 현주와 함께 방을 정돈하고 있었다.
벽에 그림도 걸어놓고 휴지통 같은 것도 방구석에 마련해 놓았다.
바요링이든 케이스는 구석에 세워놓고…
『제법 어울리네』
방이 정돈되자 현주는 차를 끓여 가지고 들어와 용신이를 보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용신이는 싱글벙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