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軍奮闘(고군분투)하는 軍宗司祭(군종사제) - 軍宗神父(군종신부) 및 關係者(관계자) 座談(좌담)
韓國(한국) 軍宗活動(군종활동)의 어제와 오늘
1951年(년) 2月(월) 軍宗(군종) 實施(실시)
初期(초기), 文官(문관)으로 從軍(종군) 가톨릭 처음부터 參加(참가)
宗敎(종교) 精神武裝(정신무장)에 核心(핵심) 要素(요소)
數(수) 不足(부족)한 軍宗神父(군종신부)
肉身(육신) 걱정은 해도 靈魂(영혼) 걱정은 안해
軍人(군인) 為(위)한 聖物(성물)「셋트」만들었으면
機動力(기동력) 없어 큰 隘路(애로)
우리軍에서 軍宗制가 생긴지 19년이 되도록 가톨릭 軍宗業務는 아직도 별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남자는 군에 갔다왔고 또 현재 군인이고 앞으로는 아들들을 군에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에서의 종교활동이란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처지인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 많은 어려움과 미해결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은 오로지 각 개인의 인식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금년에도 군인주일을 맞아 독자들로 하여금 군종활동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환기코자 군종업무를 직접 담당한 신부들과 관계자들을 모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編輯者)
■ 참석자
池學淳<주교·군종단총재>
金東玉<신부·군종단대표위원>
金啓春<신부·육군본부>
朴英載<신부·해병대사령부>
金陸雄<신부·육군사관학교>
李召東<제6관구사령관> 前駐越白馬部隊長
康義淳<성바오로병원 서무과장>
呂형구<신학교 군인부장>
司會 서금구<本社서울分室次長>
記錄 李健一 記者
때 1969년 9월 20일
곳 군중단 회의실
▲司會=우리교회에서는 작년부터 10월 첫째주일을 「군인주일」로 정하고 군인 신자들에 대한 일반신자들의 관심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군대라는 특수사회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사목활동을 하고 계시는 군종신부님을 비롯, 지휘관현역예비역 여러분을 통해 군에서의 가톨릭 군종활동의 이모저모와 앞으로의 문제점을 놓고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군종활동의 연혁을 소개해 주십시요.
■ 軍宗活動 沿革
▲金東=6·25동란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1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군에 군종제도가 없다는 보고를 받고 당장 설치하라는 엄명을 내렸읍니다. 이 명에 따라 각 군은 우선 신부·목사들을 동원해 문관으로서 종군케 했읍니다. 이때만 해도 군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십자가를 달고 부대에 들어가면 위생병이라고 하기도하고 비행대원이라고도하여 근무에 지장이 많았지요. 그러다 1951년 2월에 육군본부에 군종과를 설치했고 해군과 공군도 거의 같은 시기에 군종과를 설치했읍니다. 가톨릭은 처음부터 참가했읍니다. 현재 군종신부 수는 43명이고 군인신자 수는 전체의 약2%정도로 추산합니다.
■ 軍宗活動의 重要性
▲司會=군종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군지휘관의 입장에서 또 군종신부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십니까?
▲李召=지휘관의 입장에서 볼 때 군인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초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생관의 확립은 종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윤리, 도덕적으로 이들을 선도하는데 종교는 절대적인 힘을 가집니다. 또한 상·하간의 그리스도적 사랑이 없이는 아무리 지휘관이 지휘력이 탁월하다해도 진정한 인화와 단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종교는 우리 군이 바라는 정신무장에 핵심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金啓=현역에 복무하는 젊은이는 연령적으로 보아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 그들을 그대로 방치해둔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기반이 튼튼한 사람도 1년에 미사참례·고백성사 한번 못보고 지내다보면 자연히 냉담하기 쉬운데 하물며 거치른 환경에서 3년을 지내다보면 「성호경」 조차 제대로 안하는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꺼져가는 신앙에 기름을 붓고 자주 채찍질하여 적어도 현상이라도 유지하게 하기위해 군종활동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 現況
▲司會=현재 가톨릭의 군종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金陸=우선 신부수가 부족해 만족한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육군의 경우 적어도 1개 사단에 한사람은 있어야 그런대로 돌아볼 수 있을까 말까한데 지금은 한사람이 2개 사단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니까 지역이나 인원이 너무 벅찹니다. 그래서 군종사병 제도를 이용해서 신자들의 실정이나 파악하고 가능한 한 찾아다니면서 미사를 드리고 고백성사를 주려고 애를 쓰고 있읍니다. 후방 부대는 가까운 거리에 본당이 있으니까 그런대로 이용하지만 전 군인들은 1년에 미사참례 한번 못하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비해 개신교에서는 목사들이 연대규모에 한사람씩 나가 있읍니다.
▲金啓=월남에서는 비교적·좋은 편입니다. 우선 전쟁터이니까 그런지 신부에게 우호적이고 모든 편의를 잘 봐줍니다. 국내에서 제일 고통거리인 기동력도 그렇고 통신도 우선권을 주니까요. 예로 「베트콩」의 공격으로 길이 막혀 영세주기로 약속한 지역에 갈수 없게 되었는데 사단에서 이 사정을 알고 길을 틔기 위해 「종교구호작전」 이란 이름으로 작전을 벌일 정도였읍니다.
국내에서 「거지대장」 같은 생활을 하다 월남에서는 군종신부 대우를 제대로 받은 셈입니다.
◀司會=군종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신부의 수부족인것 같은데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池 主敎=큰 문제입니다. 원래 각 교구에서 소속신부의 1할을 보내주기로 되어있는데 잘 실천이 안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도 R·O·T·C같은 제도를 두어 졸업 후 임관해서 군종으로 복무케 하는 문제를 연구해보았지만 아직 결정을 보지 못하고 있읍니다. 앞으로 신부보충문제에 대해 교구의 협조를 바라고 복무중인 신학생들을 최대한 활용해야할 텐데 군종신부와 연락이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읍니다. 현재로 군종신부가 적어도 60명은 되어야 겠읍니다.
▲司會=평신자의 입장에서 군에 복무하는 동안 군종활동에 대해 느끼신점은?
▲康義=저는 최전방에서 근무했는데 일년내 신부님 구경을 못했읍니다. 따라서 미사도 고백성사도 못보고 지내다보니 타성에 빠져 나중엔 아무렇지도 아더군요. 그런데도 가끔 목사님들이 다녀가는 걸보면 문득 신부님이 보고 싶어지고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애요.
어느 해 성탄날 새벽 4시경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성가소리가 들리기에 뛰어나가 보았더니 연대에 있는 목사님이 성가대를 조직해서 부대마다 순방하는 길이었읍니다. 무의식중에 저도 같이 따라 붙였읍니다. 떠난 후 돌아와 누우니 인솔자가 신부님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섭섭한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
■ 軍宗神父들의 隘路点들
▲金陸=변명같읍니다만 군종신부들의 애로라는 건 말할 수 없이 많읍니다. 첫째 군대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신자아닌 지휘관들이 신부라는 위치를 신앙적인 눈이 아니고 계급의 고하로 대하는 수가 많이 있읍니다. 이들과 계급을 초월한 대인관계를 이루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군목보다 일반적으로 지위가 낮읍니다. 여기서는 오는 애로 또한 많습니다.
다같이 종교인이라는 넓은 생각에서 군종책임자는 종파를 초월, 상부상조해야 될 줄 압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가 없으면 신부가 목사가 올수 있도록 주선하고 신부가 없으면 목사가 솔선해서 신부가 오도록 도와주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군종의 임무가 아니겠읍니까?
▲朴英=지금 金신부님이 얘기한 것 외에 장교사회서 조차 신부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얘기가 나왔읍니다만 군인이기에 生活이 안정이 안되고 또 경제적으로도 불안한 처지입니다. 군대봉급에다 약간의 보조비로 힘에 겨운 일을 해야되니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많읍니다. 산골부대를 찾아가려도 차가없으니 하는 수없이 뻐스나 보급차편을 이용해야하니 그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읍니다.
■ 對應策
▲司會=많은 애로를 겪고 계신 줄 압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군종단에서는 어떻게 대책을 세우고 있으신지요?
▲金東=지난 피정 때에도 이러한 문제가 얘기 되었읍니다. 먼저 우리신부들이 자기위치를 일반 본당신부에 기준을 두지 말고 군대사회에 맞는 가치관을 확립해야 겠읍니다. 지도자라는 입장을 떠나 그들과 같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기본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부들의 직위향상문제는 지금 다각적인 면에서 절충중이지만 빠른 시일안에 바라기는 힘들고 우리가 꾸준히 터전을 닦아가야 겠읍니다. 그리고 지원문제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李召=저 역시 그런 일을 볼 때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특수사회인 만큼 군율을 무시할 수는 없고 아무튼 빨리 신부님들도 계급이 높아져야 겠읍니다.
▲池 主敎=여러 주교님들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협조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소속 신부의 10분의1 차출문제에 대해서나 이에 따른 교구의 경제부담은 잘 이루어 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구는 교구에도 신부가 모자라는데 군에 보낼 수 없다고 하기도하고 군종활동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의심도 합니다만 일선을 돌아보면 왜 우리사단에는 신부가 안오느냐고 제발좀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李召=제가 보기에도 군종신부들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혼자서 넓은 지역을 기직맥진 돌아다니는데도 교구에서는 따뜻한 위로한번 없고 마치 의붓자식 취급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 出版物 거의가 改新敎 것
▲司會=부대생활에서 신앙생활을 도울수 있는 성서는 충분히 있읍니까?
▲呂=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반잡지는 더러 있지만 종교출판물은 찾기 힘듭니다. 있어도 거의가 개신교서적 뿐이고 가톨릭서적은 인색할 정도로 보이질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내오는 가톨릭시보나 경향잡지가 있을 정도지요.
▲池 主敎=지난 5월에 군종단 출판물 보내기운동을 해봤는데 막상 들어온 것들을 보면 몇년 지난 경향잡지가 대부분이었지요.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앞으론 군종단에서 도서비를 마련해서 일괄적으로 보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읍니다.
▲金東=국방부에서도 종교출판물을 보급하고 있지만 거의가 개신교중심서적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거기에 참석을 못하기 때문인데 어떻게든 참여해야 겠습니다. 여기에는 고위층의 적절한 배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金啓=월남의 경우 처치곤란할 정도로 종교적이 들어오는데 이것역시 거의 99%가 개신교서적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신자들이 너무 무관심하고 인색한 것 같습니다.
▲康義=부대에 있는 저속한 대중잡지는 닳도록 돌려가며 읽고 있읍니다. 우선 읽기가 편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오는 정신적 피해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읍니다만 그러다가도 가끔 보내주는 성서를 대할때 무언가 숙연해지고 제위치로 돌아가게 되더군요.
■ 家族들에게
▲司會=군인가족들에게 이 기회를 이용해서 한 말씀 좀
▲金陸=전방사병의 경우를 보면 신부를 만나기 힘들어 일종의 체념에 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꼭 미사참례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대송(代송)도 할 수 있고 다른 신공으로 대신할 수 있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님들은 아들이 군에 입대할 때 이런 기본생활이나 교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러주기 바랍니다.
◀朴英=부모들이 자기아들이 배나 곯지 않는지 기합은 받지 않는지 지나 않은지 하고 육신걱정은 대단하면서 하루에 「주모경」한번이라도 바치는지는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애요. 면회 올 때 먹을 것은 한보따리씩 싸오면서 묵주하나 상본한장 가져오는 부모는 보기 힘듭니다.
▲金東=군종단에서는 「군종신부단 후원회」를 조직할 계획입니다. 우리가 정 6,7명 식구 중에 대개 한사람은 군에 가있을 겁니다. 우리가 본당에 교무금을 내는한 6분의1 정도는 군종단을 위해 도와주실 수 있겠지요.
▲康義=가정에서 입대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것 즉 기도서나 묵주 등은 꼭 준비시켜줘야 될 줄 압니다. 일일이 군종신부들이 마련해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성물판매부 같은데서 한「셋트」를 만들어 판매했으면 합니다.
▲池 主敎=그리고 대부분 우리군인들이 군생활 3년을 인생에서 제외된 것으로 생각하고 신앙생활도 일종의 방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이 3년은 과외의혹 같이 생각하는데 인생은 이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만큼 좀 더 진지하게 군대생활을 해야 하겠고 또 너무 숨어있지만 말고 내가 신자요하고 나서서 활동해 주길 바랍니다.
■ 本堂神父께
▲司會=본당신부들에게 부탁말씀 없으신지요.
▲金啓=군종신부에게 빠른 시일안에 큰효과를 바란다는 건 무리입니다. 우리는 가톨릭의 간판으로 또는 척후부대로 씨를 뿌리며 나가는 겁니다. 그 열매는 사회에서 맺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3년 동안의 막간을 이용해서 이들을 받아들일 수용태세를 갖출터이니 본당신부님들은 보낼 때 잘 타이르고 친절히 교육시켜 우리와 연결시켜주길 바랍니다.
▲金陸=그리고 휴가로 본당에 들르면 신부님들이 좀 바쁘시더라도 그간 고생을 위로해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병들이 휴가를 얻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고생 고생해서 얻은 휴가에 본당신부를 찾아갔더니 본체도 안하더니…
■ 軍宗敎區問題
▲司會=「주교들의 교회사목직에 관한 교령」 중에 군인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은 대단히 중대함으로 될 수 있으면 군종대리구를 설치하기 바란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총재주교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池 主敎=우선 40여명의 군인신부들이 전국에 또는 월남까지 종군하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서는 힘이 듭니다. 우리교구(원주교구를 말함)도 사목에 힘이드는데, 차선책으로 여러 주교님들과 상의해서 2·3명의 주교님들이 윤번제로 군종신부들을 관할해주셨으면 좋겠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군종대리구는 이른 감이 있으며 앞으로 5,6년 지나면 양상이 달라질 듯합니다.
▲司會=여기 참석하신 지 주교님과 이 장군님 그리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