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年(년)의 발자취] 本堂(본당)·敎會機關(교회기관) 어제와 오늘 ⑫ 전주殿洞(전동)본당
핏빛 殉敎地(순교지)에 建立(건립)…全州(전주)교회들의 母體(모체)
발행일1969-10-05 [제688호, 3면]
9월 26일은 순교복자축일.
이날을 맞은 전동본당 신부와 신자들은 어느 다른 본당보다도 더 한층 깊은 감회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한국의 첫 순교자인 尹持忠(바오로) 權尙然(야고보)이 바로 이 전주에서 순교했고(1791년 12월 8일) 또한 한국천주교회 초창기 假성직단(한국교회초기 평신자 중에서 신부 주교를 임명, 聖務를 담당케 했던 제도로 1787년 이승훈이 교회발전책으로 시작했다가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 의해 잘못임이 밝혀져 1790년 중단됨=편집자 註)의 신부로서 전라도 지방의 포교를 담당했던 柳恒儉(아우구스띠노)과 그 동생 柳觀儉이 六屍刑(몸을 여섯 쪽으로 찢어 죽이는 것)으로 치명한 바로 그 자리에 이 전동본당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피로써 가꾸어져 온 이 본당은 설립 후 천주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해오기 어언 70년-
그동안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온 전동본당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완주군 소양면 대성리에서 전교활동을 하던 주임 尹사베리오 신부가 1891년 지금 성당자리에 있던 한식가옥을 매수, 안채는 사제관으로, 바른편 집은 성당으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이 본당은 발족됐다.
설립 초부터 성내 여러 유력자들이 입교, 교회발전이 착착 진행되던 중 1894년 동학란이 일어나자 윤 신부는 부득이 서울로 피신, 이듬해 난이 진압된 후 되돌아와 본당시설에 노력케 됐고 전교활동도 활발히 진행되어 갔다. 尹 신부는 평소 검소한 생활을 통해 저축한 돈으로 성당을 설립코자 서울 종현성당 설계자인 朴빅토리노(佛) 신부의 설계로 1908년 중국인에게 공사를 맡기고 손수공사를 감독했다.
중국인 1백명이 전주에 와서 직접 벽돌을 굽고 돌을 가다듬는 동안 남녀 신자들은 밤낮으로 흙과 자갈을 운반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을 했으나 현장감독이 공사비를 횡령하는가하면 막대한 금액을 도난당하는 등 액운이 겹쳐 공사는 3년간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尹 신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본국 친지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한편, 본당신자들에게 물심양면의 원조를 호소, 이들의 기부와 부역을 얻어 기공된지 7년만인 1914년, 그 준공을 보게 됐으니 건평 189평의 이 성당의 웅장화려함은 호남제일이고, 그 미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 되고 있는 「로마식」 건물이다.
그러나 尹 신부는 과로로 인해 성당낙성의 기쁨도 채 가시기전인 1915년 성신강림날 미사 중 갑자기 병세를 일으켜 겨우 미사를 마친 후 3일만에 창문을 열라하여 새성당을 바라보며 57세를 일기로 주의 품에 선종, 치명산중턱에 안장되어 그의 제2고향 전주땅에 길이 잠들고 있다.
尹 신부의 뒤를 이은 2대 具 신부는 尹 신부가 못다 마친 성당미화작업을 끝내고 1926년 사제관을 신축하고 부호신자의 도움을 얻어 5개의 교실을 지어 해성학원을 설립, 청소년교육에도 힘썼다.
이 학원은 일제시 국민학교로 승격됐다가 해방 후 성심중·고교로 개편돼 3천여명의 여학생을 갖고 여성교육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다.
또 具 신부는 柳恒儉에 뒤따라 치명한 그의 가족들의 유해를 조촌(柳恒儉이 살던 곳)에서 現치명산으로 이장하여 지금까지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具 신부역시 과로로 1929년 8월 11일 자신이 지은 사제관에서 선종하고 말았다.
13대 李약술 신부가 설립한 성심유치원 역시 이 본당이 벌이고 있는 중요한 교육사업의 하나로 창설 후 20여년 동안 1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37년 전주교구가 첫 방인교구로 승격되자 전동성당은 1957년까지 주교좌성당으로 있었다.
또한 이 본당은 1947년 중앙성당 분할을 시초로 시내5개 성당을 분리시킴으로써 명실공히 전주시내 교회의 모체적 역할을 했다.
이 성당의 7대 주임인 이상호 신부(아우구스띠노)는 꼬미시움 JOC·학생회·신용조합 등 「액션」활동을 통해 현재 3천명의 본당신자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토록 노력하고 있어 앞날의 발전이 크게 기대된다.
역대 주임신부 명단
제1대 尹사베리오(佛人)
제2대 具말첼리노(佛人)
제3대 김승현(아우구스띠노)
제4대 具말첼리노)
제5대 김양홍(스테파노)
제6대 김영구(베드로)
제7대 이상화(바르톨로메오)
제8대 박문규(미카엘)
제9대 최민순(요한)
제10대 김후생(바오로)
제11대 김명제(베드로)
제12대 이상화(바르톨로메오)
제13대 이약술(요셉)
제14대 강윤식(베네딕또)
제15대 오기순(알벨도)
제16대 김종택(요셉)
제17대 이상호(아우구스띠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