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21) 갈림길 ⑤
발행일1969-05-18 [제669호, 4면]
『왜, 더 앉았으면…』
그러면서도 최호진도 일어섰다. 둘은 밖으로 나왔다. 어느사이에 밖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럼 다시 연락하겠어요.』
집까지 따라오면 어쩌랴싶었더니 최호진은 담담하게 이런말로 현주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히』
현주는 최호진의 담담한 태도가 오히려 아쉬운듯한 야릇한 심정을 맛보면서 머리를 끄떡해 보였다. 최호진은 싱긋 웃고 현주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참좋은 날이었네.)
무척 개운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나갈때와는 달리 가볍고 명랑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대문을 흔들면서 현주는 유난히도 큰 소리를 질렀다.
『이제 오니?』
어머니가 고무신을 끌고 나오고 있었다.
『예.』
문을 따주고 어머니는
『금방 갔구나.』
현주를 보고 말했다.
현주는 마당에 들어서면서
『금방 가다니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네 작은 이모말이다.』
『이모가 왔다갔어요?』
어머니는 대문빗장을 지르고 나서
『금방 갔다니까…』
약간 짜증이 아는 어조로 되풀이했다.
『어머』
현주는 최호진이와 다방에 들르지 않았더라도 이모를 만날 수 있었을걸 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동생이다. 그러나 현주와는 오륙세차가 있을까? 그렇더라도 친구처럼 다정한 사이였다. 같은 대학은 아니나 이모는 학창시절에는 더욱 현주를 아껴주고 귀여워 해주었다. 무엇보다 현주의 재주를 높이 평가해주는 사람이었다.
『꼭 너만은 외국에 유학시켜 쓸모있는 여성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현주가 외국유학의 꿈을 꾸게된 것도 사실은 이모의 충동때문이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렇게 떡먹듯 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그일은 단념하다 싶이하고 있는 현주가 아닌가? 현주는, 무엇보다, 오랫만에 만나는 이모에게 최근의 일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 박훈씨의 청혼, 최호진군의 인상 등등…
그러나 그만 아쉽게도 길이 어긋난 수가 되어버렸다. 다시금 최호진이와 다방에 들러보낸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면서
『그래 뭐라구 해요?』
오래 기다리다가 갔다면 무슨 긴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라고 짐작하고 물었다.
『응…』
현주 모친은 딸의 방에 따라들어와 딸과 마주앉으면서 말했다.
『무슨일인데요?』
『독일로 가게 됐다는구나.』
『옛 독일로?』
『응 최서방이 거기 가기로 발령이 났다는가 보더라.』
『어머! 이모부가?』
『그래.』
『그런 내색 통없었는데…』
『누가 아니라니 네 이모두 전혀 뜻밖이었다구…』
현주는 이상한 충격이 가슴을 쿡찌르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듯 하기도 했다. 아무말도 못하고 있으려니
『그런데…』
현주 모친은 무척 신중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너두 데리구갔음 싶다구 말하지 않겠니…』
아직히 말을 했다.
『뭐라구요?』
현주는 귀를 의심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 앞에 다가 앉았다.
『가족도 함께 가기로 됐대… 그런데 부부와 함께 또 한사람 갈 수 있다는거구나…』
『옛?』
현주는 동화를 듣는듯 실감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너를 데리구 갈 생각을 부부간이 했다는 거다』
현주의 심장이 롤롱롤롱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듯 했다.
외국에 데리고 가겠다는 사실이 대견해서만이 아니다. 그런 내색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었던 터수라 너무, 너무 뜻밖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주는 자신을 가누어잡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현주의 성격이 시키는 일이었다. 충격적인 일이있을 때이면 일단 충격을 받는대신 이내 그걸 가누어 잡고 침착해지는….
『글쎄, 거 정말같지 않군요.』
그러면서도 현주는 배시시 웃었다.
『나두 그런 생각이다마는…』
현주 모친도 딸처럼, 그렇게 흥분하거나 들뜨지 않은체 천천히 말했다.
현주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생각했다. 실력파의 장교이고, 미국에도 여러해 가잇었다. 고위층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해외 공관에 파견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까지 데리고 가고 그것보다 처조카를 함께 데리고 간가?
역시 믿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개웃거리고 있으려니 현주모친은 움찔 일어나면서
『내일이라도 가서 자세한걸 물어보려무나… 그러지 않아도 보내달라고 당부하구 갔으니까…』
이렇게 말했다.
당장 뛰어가고 싶었으나 영등포까지 이시각엔 너무 멀다.
『내일로 미루지.』
현주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