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늦은 꽃 (41) 분수령 ⑦
발행일1969-10-12 [제689호, 4면]
양복점에서 나온 용신이는 들어갈 때보다도 훨씬 명랑한 기분이었다.
현주도 명랑해진 용신이를 보니 명랑해졌다.
(늘 저랬으면 얼마나 좋아.)
『점심 안먹을래?』
현주는 일부러 되게 반말로 물었다.
『점심?』
현주를 보더니 용신이는
『출출해지긴 했는데… 사주면 안먹을 사람 어디있겠어요.』
응석쪼의 말이었다.
『사주겠어. 뭘 먹을래?』
『기왕 사먹일거면 근사한걸루 먹여줘야죠』
『근사한 것뿐이겠나? 그 이상 것이라도 좋으니 뭘 먹겠다는 거야?』
『무얼 먹을까?』
생각하다가 용신이는 말했다.
『선생님 이 양복 맞춰줬으니까, 점심두 선생님 먹여 주는 대로 따르죠.』
『아이유 짓궂게두 구네. 아르바이트 보조로 월부로 맞춘다고 제입으로 말했으면서…』
현주는 용신이를 흘겨보았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한거지마는, 그러니까 절반의 권리는 나한테 있거든요. 그러나 점심은 완전히 선생님의 자의와 백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선생님의 식성에 따를 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아이유 까다롭게두 구네. 이리와요. 그럼 내가 잘 생각해 먹여줄테니까…』
『오케.』
현주는 차를 잡았다.
『차를 타고 점심먹으러 간다?』
차안에서 용신이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글쎄. 오늘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잠자코 내하는 대로 맡겨두라니까, 그렇게 한다구 하지 않았어.』
현주는 또 용신이를 흘겨보았다.
『음식을 맡겼지 차를 맡겼나요?』
『자동차도 음식의 일부임을 알아야 해요』
그러는 사이에 차는 시청앞을 지나갈 서울지사앞 택시정류장에 머물렀다.
차에서 내려 현주는 D일보 뒷골목의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무슨원(園)이라는 이름이 간판으로 붙어있었다.
언젠가 현주가 학교관계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왔던 집이었다.
이층으로 인도 되었다. 조그맣고 아늑한 방에 들어갔다.
『이건, 음식이 어떻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용신이가 여종업원이 가져다주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왜?』
현주가 물었다.
『점심이란 냉면집이나 그렇지 않으면 곰탕집 널판자결상에 걸터앉아 잠깐먹고 나오는 게지 이런 고급…』
『이집도 마찬가지애요. 어떻든 나한테 맡긴댔지 않았어?』
『아이쿠』
음식이 들려 들어왔다. 별로 호화찬란한 것은 아니었으나 젊은 용신이가 좋아할 쇠고기 요리가 오른 간단한 것이었다.
『야앗』
용신이는 식욕이 자극받는 모양이었다.
천음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솔깃이 식사를 그것도 탐욕스럽게 했다.
현주는 맛있고 복스럽게 먹는 용신이가 또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현주의 몫까지 용신이 접씨에 놓아주면서 더 많이 먹도록 권했다.
『이건 먹기 내기의 응원인가요?』
『아이참.』
그리고 현주는
『응원이래두 좋구 무어라도 좋으니 많이 먹어요』
마치 입맛없어 하는 아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어머니 같았다.
『난 이렇게 많이 먹지마는 선생님은?』
『나? 내 걱정은 말고…』
그리고 현주는 고기조각과 김치같은 것을 먹었다.
『어 잘 먹었군.』
식사가 끝난뒤 용신이는 더욱 여유있고 명랑한 기분으로
『오랫만에 생신을 쇤것 같네.』
웃으개를 했다.
『생신? 그랬다면야 더욱 좋지.』
현주는 생신이라는 말에서 용신이의 언동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집에서 변변히 생일축하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생일은 언제지?』
『내 생일?』
용신이는 말할 듯하다가
『잘먹는 날이 생일이지 뭐 달리 생일이 있나요?』
웃어 보였다.
『이건 이상재 선생 같은 말을 하 고있네.』
현주의 말에
『사실이지 뭡니까?』
그러더니 용신이는
『제가 후에 한번 점심 한턱 잘 내겠어요.』
현주를 보고 느믈대듯 말했다.
『오늘 얻어먹었으니 그렇다는 투네』
『그렇지 않습니까? 사내대장부가 여성한테서 점심을 얻어먹고 시치미를 떼고 있을 순 없거든요.」
『뭐라구?』
현주는 용신이의 뺨을 손으로 꼬집어놓았다.
『얄밉게 굴지 말라구.』
『그렇지 않읍니까? 제성민 신세를 지고 시치미를 떼는 성미가 아니니까…』
『밉게 굴지 말래두.』
현주는 이번에는 용신이의 등을 주먹으로 쾅 소리나게 쳤다.
『정말이라니까요』
음식집에서 나와서였다. 용신이는
『찻값이나 주세요』
『찻값? 함께 가서 마시지』
『아니 친구한놈 찾아가 그놈하구 마시겠어요.』
『그래?』
현주는 오백원짜리 한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