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근본적으로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이나 공의회가 새롭게 하고 명백히 해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러분, 이것은 현시대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불어 많은 점에 있어서의 선교의식을 새롭히도록 일깨워 줍니다.
인간 결속을 진보시키려는 것도 그러한 「아이디어」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사이의 결속을 증대시키고 선진국 시민이나 정부가 기꺼이 그리고 희생적으로 개발도상 국가를 돕게 해줍니다.
우리는 이것을「제민족의 발전」이라는 회칙에서 밝힌바있는데 여기에 선교 활동이 인류와 크리스찬의 결속문제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와 같이 선교 활동의 개념도 발전해 왔읍니다.
지금까지는 선교라면 마치 머나먼 곳이나 낯선 땅에서 겪는 모험이나 되는 것처럼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여겼읍니다.
오늘날의 그 개념은 더욱 적극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선교활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게 되어 지나치게 졸렬하고 실험적인 계획을 덜어주며 험준한 지리적 답사를 면해주며 선교사의 실질적인 활동을 간소화해 주고 훈련을 더 과학적이고도 특수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나 더 많은 성소와 경제적인 뒷받침을 요하게 됩니다.
전교해야할 국가에 대한 선교사의 태도역시 많이 진보됐읍니다. 문화의 다양성이 선교사의 복음전파에 장애물이 되기는커녕 이해되고 기르고 채택해야할 존경과 찬탄의 대상이 되었읍니다. 공의회에서도 그것은 『정화하고 강화하고 높여주어야(교회헌장 13)』한다고 말했읍니다.
그 때문에 선교사는 신앙과 함께 자기들의 문화를 떠맡기려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 지역의 가치있는 관습에 어울려 복음의 생생한 감명을 제공해주는 벗이며 형제입니다.
인류의 문화에 대해 「다원론적」이고 신앙과 교회에 대해 「一元論的」인 선교사의 태도는 언제나 전교의 귀감이 되어왔읍니다. 이것은 이미 삐오 12세의 「복음전파」란 회칙에서 지적된 것이지만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두드러집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선교활동의 동기와 윤리적 가치는 확고합니다.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을 바친 현지의 수많은 남녀선교사들이 이것을 증거 할 수 있읍니다.
또한 과거와 똑같은 선교사의 자질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자신의 온전한 봉헌, 기꺼이 위험을 무릅쓸 각오, 인내심, 진보가 느리고 성과가 없는 것 같이 보일 때라도 참고 견디려는 노력, 희생정신, 자기 자신의 고통을 달게 받으려는 마음으로 말뿐 아니 라 표양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교사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으로 그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걸어간 「치레네」의 시몬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훌륭한 정신을 선교자체의 필요성과 그것을 풍족하게 도와야하는 의무와 관련시켜 선교에 대한 「메시지」를 끝맺는 상투적 호소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타산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화계획과 사랑의 이론이 그것을 필요로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업은 여러분의 협조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사랑을, 기도를, 헌금을 필요로 합니다.
선교가 그리스도 자신의 주장임을 안다면 누가 이것을 거절할 수 있겠읍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마칠 때까지 신비로운 길을 닦아주시고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시며 인간의 숙명을 벗겨주시고(그분 없이는 버려진 외톨일 수밖에 없는) 각 인간과 결합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의 목자와 구세주로서 영원한 생명의 기쁨에로 이끌어주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폴이하며 감사와 신뢰가 가득찬 마음으로 여러분께 강복합니다. (끝)
「바티깐」에서
교황 바오로 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