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륙세 적인가 싶다.
그때 나는 문예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조부의 신교육반대에 부딪쳐 제일고등보통 학교를 중도에서 퇴학하고 집에서 한문을 읽을 무렵이다.
낮에는 조부에게 論語를 배우고 밤이며는 한문책은 치워놓고 소설을 읽었다.
그 당시에는 거의가 일본말로 된것들 뿐이었지만 그런대로 읽을 수는 있었다. 한창 피어날 나이고 보니 자연 연애소설이라는 것을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일이지만 그때 그 시절의 나는 확실히 지금의 나보다는 순진했던 것 같다. 일본말로 번역된 외국의 명작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읽고는 울고 울다가 다시 읽고 이꼴을 바라보시는 내 어머님이
『저 아이가 학교엘 못가서 저렇게 운다』고 한숨 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많은 문학소년들이 그렇듯이 우선 감격한 것이 하이네의 시였다.
오직 한사람 그녀로 하여
나는 이다지도 슬프단 말가
머… 이런 의미의 명구가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항상 외우고 지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남의 일이 내일 같아서 무작정 울던 시절이 숫제 그립다.
다음번으로 나를 울린 것은 저 유명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주인공이 권총자살을 하기까지에 혼자만이 애태우는 그의 쓰라린 가슴이 꼭 내 가슴만 같아서 소리를 높여 읽으며 울었다. 영문을 모르시는 어머님은 학교엘 못가게 했더니 미치나 보다-더럭 걱정이 돼서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시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어머님의 하시는 일이 딱해 보이기도 했지만 인제는 오로지 나를 사랑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어찌나 그리운지 요즈음도 세상살이에 시달려 고달픈 밤을 밝힐 때 철없이 어머니를 부르며 울기도 한다. 인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외국에서 유명하다는 책은 거의가 우리말로 옮겨진다. 게다가 대학도 흔해서 외국어를 해독하는 이도 제법 많아졌다.
그러나 모두들 어찌나 분망하고 거칠어졌는지 하이네 읊조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그런 흐뭇한 시간은 거의 갖지 못하는가 싶다.
원두막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한가로이 당음(唐音)을 읊던 시대는 이미 한 옛날 전설 같아 졌지만 젊은이의 풋 가슴에 티없이 부풀어 오르는 순정이 퇴색해 가는 것은 몹시 안타깝다. 이번 가을 단한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읽으며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책을 얻기 힘들지는 않다. 숫제 읽을거리가 너무 많아서 선택하기에 머리를 쓸 지경이다. 젊었을 때 읽고 감명이 큰 대문은 한평생 간다. 그래서 책을 선택하기에 신중해야 한다. 좋은 책을 골라서 한평생 간직함직한 감명을 얻자 단한권이라도 좋으니 마음먹고 골라서 마음의 양식을 삼으려는 마음씨가 가장 요긴할 것 같다.
李瑞求(씨나리오 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