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⑬ 聖祖史記(성조사기) ③ 아브라함의 聖召(성소)
單純(단순)한 遊牧民(유목민) 移動(이동)
世界史(세계사) 變革(변혁)의 契機(계기)
발행일1969-05-25 [제670호, 2면]
오늘날 考古學上의 발굴작업에 의한 조사와 오랜 문헌 및 碑文들의 연구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적 윤곽을 퍽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選民의 역사는 俗史的 관점에서 볼때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가 많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창세기」의 성조사기는 年代上의 근거를 확인한 사건들을 차례로 정확하게 보고하고 있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 문헌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 고대의 영웅 敍事詩와도 같이, 수백년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한 家門系譜의 종교적 口碑傳承이다. 이 傳承은 王政時代에 와서야 글다운 글로 기록되었고, 더구나 그 최종적 형식이 固定되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유배생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인 기원전 500년경이다. 거기에는 무려 1200년이라는 간격이 있으니, 우리는 성경 본문에서 성조들의 실제 생존 연대라던가 당시의 時代的 常況을 소상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예컨대 필자는 前回에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移住해온 年代를 定評있는 「예루살렘聖書」의 부록 年代表에 따라 기원전 1850년경 즉 기원전 19세기 중엽이라고 했지만, 近者 많은 학자들은 아브라함의 생존시대를 함무라비王의 통치시대 즉 1700년 전후로 推定하고 있고, 개중에는 더 후대인 1500년경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점에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 저자 자신이 그러한 연대나 사건들의 외적 경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온전히 이스라엘의 「唯一神敎的 신앙의 形成」에 力点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르 第3王朝의 멸망, 바빌로니아 第1王朝의 발흥과 大帝國 건설의 雄志를 품은 함무라비王의 괄목할 法治, 후에 戰車를 몰고 에집트를 席卷한 힉소스族의 세력 증대 등 세속 세력과 문화의 대변혁에 비하면 실로 문제도 안되는 작은 사건인 아브라함의 가나안 移住에, 성경 저자가 획기적 意義를 부여하고 있는 이유도 이 유일신교적 신앙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너의 고향과 너의 친척과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써 큰 민족을 이루어 너에게 복을 내리고 너의 이름을 크게 떨치며 네가 바로 축복 그것이 되게 하고자 하노라』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 뜨내기로서 정처없이 방랑하는 것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되는 길일까? 일반적 경험으로는 자기향토와 氏族관계의 保護圈을 떠난 移住民은 조만간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고 同化되기 마련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때에는 아브라함이 받은 명령과 약속은 모순되지 않는가?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정말같지 않은 부르심에 따랐다. 이것은 하느님이 「歷史와 主宰者」이심을 굳게 믿는 이스라엘 신앙의 행동적인 告白이다. 피상적으로 본다면 아브라함이 길을 떠난 것은 다만 유목민으로서 그 牧草地를 바꾼것 뿐이다. 세계적 대사건들의 변두리에서 항상 일어나는 예사로운 일로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은 모든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 변혁의 시작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이라는 신앙상의 典型的 인물이 「손종과 신뢰」의 행위로 응답함으로써 인류 역사라는 밭에 새로운 씨가 뿌려졌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하느님과 성조들의 對話를 통해서 싹트고 모든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 자라나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었다.
이 하느님의 구원계통은 「모든 믿는자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 예수 그리스도 - 교회를 거쳐 우리 자신에게 이르기까지 連綿히 발전 확대되어왔다.
따라서 우리도 하느님의 같은 부르심을 받고 아브라함의 決斷으로 시작된 「역사의 磁場」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하느님은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 부르시고 계시는가?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두가지 기묘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그 한가지 방법은 은총과 성신을 통한 방법으로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내적 침묵의 소리이다. 주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힘있게 파고들어 우리를 불러주신다. 또 한가지 방법은 외적, 인간적, 감각적, 사회적, 법적, 구체적 방법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문가들, 사도들, 성직계, 불가결의 수단,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기관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런 수단과 기관들은 마치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의 「메시지」를 감각적 언어로 싣고가는 수레와 같은 것이다. 사도 성 바오로와 함께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설교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신앙은 들음에서 온다』고 (바오로 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