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자 많이 내기로 소문난 윤마오로 수녀를 찾아 이곳 대구신암동 분도 수녀원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커튼 밖으로 적요한 어두움이 쌓일 무렵 따끈한 차한잔을 마시고도 한참 기다리노라니 안경을 끼신 퍽 부덕해 보이는 한 40대의 수녀님이 들어서신다.
『전교하신지 몇년이나 되십니까』 『해방전 2020년간은 이북서 6·25후부터 지금까지 20년 한 40년 했읍니다』 『전교를 40년 하셨어요? 그럼 수녀님 연세는?』 『내년이 회갑입니다』
검은 베일 아래 외모는 좀처럼 그렇게 안보이지만 역시 그 얼굴이면에 말할 수 없이 서린 노고의 그늘이 자연, 예쉰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몇명이나 됩니까?』 『세어보지도 않았으니 모르지만 수천명 되겠지요. 그런데 제가 신문날일은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데…』
내내 사양하는 걸 다시 붙들고 『40년간이면 이제 무던히 이력도 나셨겠지만 전교하는데 있어 가장어려움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하는 질문에 전교의 어려움은 겪어보지 않고는 말하지도 말라고, 이력은커녕 갈수록 태산이라면서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침에 있어 어찌 분이 나겠느냐 하셨지만 참으로 분은 젊을 때 나는 것이요, 또 기운이 다 쇠진했을 때나는 것』이라 한다. 과연 『선생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특히 영세민이 많은 본당에서(현재 신암본당에서 8년째) 노인들과 부녀자 문맹자들을 주로 상종하는 윤 수녀님은 어떤 부류에겐 순전히 口傳으로 교리를 깨우치고 외우게 하자니 하루에도 몇 번 울음이 터질 지경이지만 그래도 배우겠다고 오는 그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대견해서 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즘 나온 「새교리서」는 특히 지성인 아닌 일반대중을 위해선 가르치기 힘들게 되어있다고.
『어떻습니까. 교리자체는 잘 모르지만 그 신심이나 열성을 보아 영세를 줄 수 없느냐』는 질문에 수녀님의 방침은 『예비기간에 어떻게라도 완전한 신심을 길러주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12단 중 「성모송」「주의기도」「사도신경」이라도 외워야되겠고 그래야만 천주님과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대세를 줄망정 아무리 열심한 노인이라도 주요기도 정도 못 외우면 영세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4년을 가르쳤는데 아직 성모송만을 겨우 할 수 있는 노인이 있는가하면 묵주알을 기도없이 그냥 굴리는 사람, 교리책을 거꾸로 들고 앉아있는 노인도 있다면서 흔히 영세 때가 되어 탈락되면 우는 사람도 있지만 수녀님은 끝내 이들을 위로하고 달래면서 또 가르치는데 사실 시일 문제지 가르치면 못 배우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영세 후 냉담자는 특히 골치거리, 워낙 사람이 많다가 보니 그들을 일일히 살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일요일 미사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참석하고 예비시킨 제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만나보고 먼빛으로라도 보고 안심하며 또 다른 이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데 어떤 냉담자를 찾아내기에 2달을 걸리기도 했다면서 냉담의 원인을 주로 교무금체납과 생활고에 있다고 했다.
영세 후에도 어디서 사는지 영신생활이 늘 걱정이지만 때로는 멀리 가서도 돌아와 가끔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또 혼배 가정사정 등 개인사정을 의논하러 오는 이도 있지만 이들 「큰아이들」을 걱정하기엔 「새아이들」을 돌보기조차 바쁘니 또한 안타깝다.
윤마오로 수녀가 월남 후 맨처음 교리를 시작하기는 6·25피난 당시 부산 15육군병원, 그때는 환자를 위문 겸 방문하고 수없이 대세를 붙였고 대세하고 이튿날 가면 이미 죽은 군인들도 부지기수라 슬프기도 했지만 일변 다행이기도 했다. 그 후 전라도, 선산 등을 거쳐 대구에 와선 본당이외에도 동부시립병원, 서부시립병원, 동산병원, 희망원 등 무의탁 환자들을 찾아 전전했는데 당시 교통이 불편한 이 변두리 수용소를 찾아 겨울에도 매일 시오리길을 걸어 다녔고 환자들을 위해 먹을 것 의약품 등을 한점씩 들고 다니며 직접 치료하고 우유를 끓여 노나 먹이는 등 실로 전교뿐 아니라 육신구제에도 갖은 고통을 무릅썼다.
실로 40년간, 중생의 영혼구제에 젊음과 심혈을 다하노라고 밥먹을 시간도 잘 없고 신공시간을 _____기 영신을 위해 고요히 천주와 마주대할 겨를 없는 것이 스스로 딱하다는 윤마오로 수녀님은, 이미 수녀원 저녁식사시간도 훨씬넘고 또 밤교리반이 남았다고 하면서 어두운 수녀원 뜰을 내려섰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