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皇(교황)『메시지』現代生活(현대생활)의 祈禱(기도)
宗敎(종교), 人間敎育(인간교육)의 最高峰(최고봉)
頹廢的(퇴폐적) 現代思想(현대사상), 無信仰招來(무신앙초래)
魅惑的(매혹적) 매스·콤, 內的生活(내적생활) 破壞(파괴)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종교의식을 깨우쳐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잘 이해하고 당부하는 바를 충실하게 이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는 이미 지난번에도 말한바 있는 기도의 필요성과 기도해야 할 의무에 관한 것입니다. 현대인은 왜 기도를 해야 합니까? 그보다 먼저 어떻게 기도에 선행하여 하느님을-비록 희미하나마 심오하고 신비로우며 또 자극적인-인식 할 수 있읍니까?
기도는 대화입니다. 이 대화는 참된 의식을 가진 人間과 볼 수없는(비록 현존하신다고 느끼지만) 상대자간에, 人間과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분, 우리를 경의와 사랑으로 채우시는 분間에, 人間과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시고 또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형언할 수없는 神적인 분間에 이루어집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상대는 우리생명의 필수적이요, 사랑스러운 원칙이며 하늘과 같이 우주와 같이 넓고 높으시이며 창조주이시며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종교적 의식을 일깨울 수 있읍니까? 우리의 부르짖음은 비록 뜻으로 채워져 있고 영신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미소합니다. 그러나 이 부르짖음은 탄식이나 노래로 우리의 子女적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를 발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이러한 종교감을 불어넣는 방법은 무엇이겠읍니까?
현대인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을 아주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적 감정은 마치 弱해졌고 핍진해졌으며 사라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명명하기를 非神秘化, 世俗化, 理性主義, 自己만족, 무신론, 反神論, 唯物主義라 합니다. 어쨌든 문제는 심각해졌고 또 극도로 복잡해 졌읍니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사상들은 간단하게 군중에 침투하고 인기를 획득하며 文明과 倫理의 찬성을 받고 마치 사상과 발전의 정복처럼 어디든지 손을 뻗히고 있읍니다. 이것은 마치 종교도 없고 신앙도 없고 神도 없는 새로운 時代를 초래하며 또 인류는 無意味하고 强壓的인 條件에서 해방케 하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 싶이 그럴 수는 없읍니다. 여러분은 죨겐슨의 「위에서 내려온 실」의 비유를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실에 생명의 모든 직물이 매달려있어 이 실이 끊어지면 모든 생명은 축 늘어지고 쇠퇴하며 眞實한 의의와 가치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실은 바로 하느님과의 연결이며 종교인 것입니다.
종교는 우리를 保有하며 우리에게 풍부한 감정을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신기함, 삶의 기쁨과 책임감 등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읍니다.
우리의 직무는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우리의 世代가 이와 같이 高貴하고 없어서는 안될 종교적 감성을 保有하고 양육하는데 받는 어려움을 보고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이 世紀의 子女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의 난관들 특히 心理的인 面에서 오는 것들을 이해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대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증가해줍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도와 주고 싶읍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現代생활을 建立하는 巨大한 사업에 결핍된 靈的補遺를 제공해 주고 싶읍니다. 우리의 使徒的 課業과 司牧的 使命은 우리時代의 巨大한 敎育문제에 해결점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敎育이라고 말했읍니다. 換言하면 人間의 完全한 형성과 발전을 말하며 이 교육은 人間의 神秘로운 본성을 그의 機能을 끝으로 그의 運命을 正히 해석하고 알아들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眞理와 完成의 교육은 人間 宗敎의 문지방으로, 하느님의 必要에로, 신앙의 응접에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敎育이란 萬人에게 주어진 지식이며 賢明하고 正直한 生活을 하는 者에게는 천성으로 주어진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부모들 보다 더 본능적으로 또 더 잘 가진 사람은 누구이겠읍니까? 그리고 敎育家가 아니고선 누가 이 비밀을 더 잘 알겠읍니까? 一般的으로 남의 앞에 나서서 말하는 자 즉 홍보담당자, 예술가 政治家들이 아니 겠읍니까? 그리고 各者는 自身에게 좋은 敎育家가 되어야하지 않겠읍니까? 그렇지 않다면 良心은 무슨 價値가 있으며 自由는 무슨 所用이 있겠읍니까?
그렇다면 宗敎는 人間敎育의 最高峰의 位置에 있는 것입니다. 實相은 절정이기 전에 根源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有名한 이태리와의 條約文에 적혀있듯이 人間발달의 路線이 合理的이요, 決定的인 方向을 取하게 될 때엔 宗敎는 「基盤이요 극치」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으로 人間을 사랑하고 宗敎의 必要性을 절감하고 있는 여러분 自身에게 우리를 도와줄 것을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 세상사물에 종사하고 있는 여러분은 종교적 감성과 하느님의 신비성과 하느님과의 對話와 一致에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계된다고 생각하는 한가지 例를 들어봅시다. 映畵와 텔레비젼의 매혹적인 影像에 對한 것입니다. 이 영상들은 사람들의 内的生活 特히 젊은이들의 内的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읍니다. 이 多樣多色한 영상들은 기억에 인화되어 정신에 印畵되는 것입니다. 또 만일 계속 탐구하고 또 사로잡히면 이 영상들은 推理의 기능을 代置하고 두뇌를 쓸데없는 환상으로 채우며 실생활에서 모방하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外面化되며 감각의 세계로 低下되고마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