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人間像(인간상)] ④ 聖(성) 베네딕또
靈肉(영육)이 調和(조화)된 人間完成(인간완성) 目標(목표)
眞理(진리) 명상하며 勞動(노동)하는 理想的(이상적) 人間像(인간상) 具現(구현)
그의 戒律(계율)은 그리스도敎(교) 文明(문명)에 위대한 공헌
발행일1969-05-25 [제670호, 4면]
우리는 서구적 인간과 문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聖 베네딕또의 戒律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몽떼 갓시노」 수도원의 탑위에 있는 독방에서 수도자들이 쉬고있는 동안에도 기도와 명상에 젖었고, 때로 창가에 서서 암흑 속에 잠자고 있는 구라파 제민족을 염려했다.
전능의 神의 광명을 기도하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그 戒律, 그리스도교적인 인간형성의 계율이 될 그 계율, 그리하여 드디어 그리스도교문명에 위해단 공헌을 하게된 그 계율을 썼다.
오늘날 서양문화에서는 여러가지 다른 인간관과 사회관 위에 선 「휴매니즘」이 주장되고 있다. 「맑스주의」도 「휴매니즘」을 표방하고 있고 실존주의도 「휴매니즘」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휴매니즘」들중 가장 대조적인 것이 실존주의적 「휴매니즘」과 과학적 「휴매니즘」일 것이다. 예를 들어 싸르뜨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을 「絶對的出現」(SURGISSEMENTABSOLU)으로 보고 『인간은 自由이지 自然은 아니다』고 신념하여 문화의 창조자로서의 인간과 생물로서의 인간과를 떼여 놓을려고 하는 사상인데 대해, 고고학, 인류학, 생물학, 심층심리학 등은 인간의 육체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과의 사이에 밀집한 관계가 있음을 중시하고 인간현상 전체는 생물학적 조건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상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인간은 생물임과 동시에 「페르소나」인 것을 주장하시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페르소나」적 조건과의 관계를 싸고 그리스도교의 초기에서부터 여러가지 사상이 있어왔다. 이것을 크게 둘로 나누며는 하나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반발하여 이것을 극복해서 「페르소나」적 조건을 높이려고 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생물학적 조건을 겸손하게 인정하여 이것을 「페르소나」적 조건에 질서있게 적응시켜 전체적 인간의 완성을 시도하는 흐름이다.
이 두 사상의 흐름은 희랍 · 로마철학사상의 영향이 큰 것 같다. 聖 베네딕또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애급의 소다사들과는 달리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의 겸손을 받아들인 위에서 인간을 육성하려는 것이며 이러한 수락 위에서 그 계율은 인정했다. 즉 그의 계율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페르소나」적 조건과의 옳은 조화위에 놓인 인간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聖 베네딕또의 戒律을 읽어볼때 그의 깊은 인간성에의 配慮에 놀랄뿐이다. 심한 고행으로 聖性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영육으로 되어진 인간성의 완성을 목표하고 있다. 그는 節度 · 노동 · 독서 · 기도를 중시했다.
그는 노동과 독서를 균형있게 시키고 식사와 독서를 함께 시키는 것은 노동이나 식사동안에도 독서한 진리에 관해서 명상하고 노동을 명상에 의해서 정신화하고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 高揚되기를 목적해서이다. 神的인 진리를 가르치는 책 특히 성서의 탐讀은 육체와 정신 노동과 명상을 일체화하는 중개자이다. 그의 戒律이 요구하는 독서는 학식을 높힌다거나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이용하여 어떤 利得을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조건과 「페르소나」적 조건의 상호 침투에 의한 인간완성을 꾀하는 일과 부단히 神과 一致되어 살아가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독서를 神的讀書(LECTIO DICINA)라 한다.
침묵속에서 심원한 진리를 명상하고 神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노동을 하고, 생물학적 생명을 영위해 가는 인간, 바로 이것이 이상적 그리스도교적 인간이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교적 사회 참 그리스도교적 문명은 이러한 사람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현대사회의 초기에 맑스가 노동가치설을 들어 노동자의 역할을 중시한데 대해 聖 베네딕또의 『기도하며 일하라』는 원칙에 선 노동관을 통해서 이 두 노동관의 相異,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교 문명과 공산주의 문명과의 본질적인 상이를 이해할 수 있다. 맑스가 인간을 물질과 노동에 종속시켜 富의 생산을 위해서 「페르소나」를 말살하거나 속박한데 대해 聖 베네딕또는 물질과 노동을 인간에 봉사시키고 그것으로 인간의 「페르소나」를 높이려고 했다. 그도 노동과 생산이 일면 인간의 「페르소나」를 저하시킬 가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루를 노동과기도와 독서로 삼분하였다.
어쨌든 나는 聖 베네딕또의 戒律에 나타난 인간상의 위대함을 다음의 얘기를 인용함으로써 증명하고 현대의 이상적 인간상도 그의 戒律에 근원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가의 종교접근」 속에서 聖 베네딕또의 동굴, 즉 「싸끄로 스뻬꼬」를 방문했을 때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곳이야 말로 西洋 그리스도교의 발상지이다. 교황 삐오 9세가 쓴 감동어린 라띤어 碑文, 이 동굴에서 일어난 위대한 추진력에 의해서 그리스도교에 기이한 세상끝까지 깔려있는 나라들의 이름을 읽으면서 나는 일찌기 암흑시대의 혼돈상태 속에서 빛나는 서양 그리스도교문명을 낳은 세계가 다시 도래하여 현대의 서양화된 세계가 다시한번 전과같이 神에게 奉헌되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