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世史(구세사) 교실] ⑭ 聖祖史記(성조사기) ④ 聖祖(성조)의 流浪生活(유랑생활)
聖祖(성조)에도 우리와 같은 試練(시련)
暗示(암시) · 奇蹟(기적) 없는 지루한 歲月(세월) 속에
限(한)없이 허우적대며 逼迫(핍박)만 받아
발행일1969-06-01 [제671호, 2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대에 순종하여, 장차 상속으로 받을 땅을 향해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고 떠났읍니다.』(헤브 11·8)
아브라함 향해가던 가나안 땅은 어떤 곳이었을까? 불행히도 이 시대 이 지방의 생활을 전해주는 문헌도 碑文도 거의 발견되지 않고있다. 그러므로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성조사기의 증언을 따라 推察할 수밖에 없다. 인구밀도가 매우 희박했을 이곳의 原住民 가나안 사람들은 대체로 견고한 都城을 짓고 그 안에서 취락생활을 했고, 유목민은 그 언저리에 천막을 치고 ㄷ지냈던 것 같다. 아브라함은 유랑하는 유목부족의 한 族長으로서 많은 친척과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것이다.
選民의 초기 族長들은 당시 바빌로니아나 에집트에 비해 훨씬 後進的이던 가나안의 土着文化와 깊은 접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에 묘사된 성조들의 생활 풍속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法典과 古代 「아씨리아」의 법률들에 영향받은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과 가나안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맞부닥친 것은 그로부터 약 5백년후 즉 기원전 13세기에 선민이 이땅을 정복하고 정착하게 되었을 때이다.
「헤브레아」라는 말은 「셈」의 증손인 「에베르」와 관련이 있고, 그 語源은 「통과한다」는 뜻의 「이브리」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하비르」라는 형으로 쓰이고, 에집트에서는 草原지대에서 오는 약탈자를 가리켜 「아피르」라고 했다.
헤브레아 사람들은 분명히 「통과하는 자」 곧 「유랑민」이었다. 이 「헤브레아」라는 말은 아브라함 시대에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또 모세시대에는 그의 領導로 「나일」의 나라에서 「요르단」의 나라로 이동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 동안에 선민은 그들 자신의 처지와 운명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성경에 소박하면서도 진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은 딱딱한 도덕가도 아니고 또 시종일관 꿋꿋이 하느님과 함께 걷는 신앙의 영웅도 아니고, 오히려 신앙의 시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예컨대 생활관계로 각처를 轉轉하다가 에집트로 내려갔을 때 그곳 사람들의 폭행을 겁내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 속였고, 또 아내에게도 그렇게 거짓말 하라고 권하였었다. (창세 12·10~20, 20·91~18) 성경 저자는 이러한 「에피소드」를 곁들임으로써 오히려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를 더욱 돋보이게 浮刻시켰다. 유일신에 대한 아브라함의 신앙은 단순하고 原初的이다. 그의 신앙에는 아무런 神전도 필요없었다. 하나의 「돌」, 하나의 「나무」가 그에게 하느님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돌」은 제단의 구실을 했다.
바빌로니아의 웅장한 신전도 야단스러운 종교예절도 이 유데아인의 조상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기원 18세기경 우리에게는 분명치 않은 점이 많은 역사의 상황에서, 일개 유랑부족이 과연 이같이 메소포타미아의 星辰숭배와 토템신앙의 多神敎를 탈출하여 유일신에 대한 순수한 神槪念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르낭에 의하면 태곳적부터 「셈」족의 牧者들은 이마에 절대자이신 神의 표를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어쨌든 신앙으로 하느님의 약속에 참여한 아브라함은 인간적 상식으로써는 『희망할 수도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다.』(로마 4·18 참조)
牧草地 관계로 「로트」一族과 분규가 생겼을때 아브라함은 선선히 양보하였다. 이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인간편의 愛德과 희생이 先行해야 한단느 기본 진리를 가르친다. 로트와 헤어져 헤브론의 말레에 자리잡고 야훼께 제단을 쌓아드린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신 · 망 · 애 三德의 典型을 보는 것이다.
동방의 네 王이 「소돔」과 「고모라」를 습격 약탈하고 토트를 비롯한 많은 주민들을 사로잡아 끌고갔을 때 아브라함은 즉시 자기 종들을 거느리고 이웃 부족과 함께 네 王을 추격 격파하였다. (종의 수 318명이라는 숫자는 이른바 「게마뜨리아」로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세르의 이름의 「알파벳」서열을 숫자로 환산한 것이라 한다) 포로들을 구해가지고 개선하는 길에 아브라함은 「(예루)살렘(=平和)의 왕」이요 「지존하신 하느님의 제관」인 멜키세덱(正義의 王)을 만난다. 이 이야기에는 聖祖 아브라함과 후에 다위왕국의 聖都가 된 「예루살렘」과를 관련시키려는 성경저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시편 作者는 이 멜키세덱을 메시아의 前表로 보았고(시 109 · 4) 신약의 헤브레아서 저자 역시 정의와 평화의 왕이요 영원한 大司祭이신 그리스도의 前表로 보았다. (7장) 교회의 전례는 빵과 포도주를 봉헌한 「메키세덱의 제사」를 신약의 제사 즉 미사성제의 豫型으로 기리고 있다. (미사 典文)
『그 (멜키세덱)의 이름의 뜻은 정의의 왕이요 다음으로 그는 살렘왕 곧 평화의 왕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마지막도 없어 하느님의 아들과 같으며 언제까지나 대사제로 머물러 있는 분입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요. 족장인 아브라함도 가장 좋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읍니다.』 (헤브 7·2~4)